시. 산문. 편지글.

이층집 마당에 있던 감나무가 그립다.

碧 珍(日德 靑竹) 2019. 6. 5. 16:21

 

 

 

 

이층집 마당에 있던 감나무가 그립다.

 

 

 

 

 

아침나절 집을 나서 골목을 돌아서면 오래된 이층집 앞마당에 늘 보던 오래된 감나무 한그루 있었는데 올 5월 중순부터는 볼 수가 없어 서운한 마음 그지없었다, 두 주일쯤 전 중기의 요란하고 둔탁한 소리와 더불어 이층집을 철거하면서 감나무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2012년 5월 중순경 초여름 비가 그친 날 오전 외출하다가 이층집 담장 옆 골목길에 떨어진 노란우유 빛에 황백색 나는 소박한 감꽃을 보고감나무 꽃이 필 때면하고 몇 자 적은 적이 있다.

 

어인 일인지 골목 모퉁이 이층집 감나무를 볼 때마다 사시사철 따라 변하는 감나무 모습이 사람의 인생살이를 보는듯 하던 그 감나무가 오늘따라 생각난다. 담장이 나지막한 이층집마당 모퉁이에 있는 오래된 감나무가 세월과 내기를 하듯 버티어 서, 비온 뒤 부는 시원한 바람에 날리는 진한 고동 녹색감나무 잎은 조그만 꽃병처럼 생긴 노란빛의 황백색 감꽃을 피우기 위하여 우주 자연의 기운을 먹으며 잉태를 준비하고 있는듯 보였던 감나무이다.

 

그러면 한 달여 채 못 되어 골목길을 돌아 가다보면 담백함을 느끼게 하는 노란 빛의 황백색 감꽃을 잉태한 무수한 감꽃을 만나게 될 것이고, 골목에 떨어진 감꽃을 주워 호호불고 향기를 맞거나 입에 넣고 깨물어 향 내음과 떫은맛을 보게 되면, 어린 시절이 생각나고 고향 옛집이 그리우며 죽마고우들도 보고파 생각에 잠겨 그때를 혼자 즐기는 마음이 되곤 하였던 그 감나무가 사라져 버렸다.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주위에서 사라진 것은 골목 모퉁이 이층집마당 한 모퉁이에 서있던 소박한 감나무만 아니라, 소중한 인연들과 많은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 갔다. 태어나고 자라던 우리 집은 마당이 제법 넓다, 외할머님께서는 흙과 농사일을 사랑하며 한 세상을 사셨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그가 태어난 집을 해마다 늘리시어 기거하는 본채 집 뒤로는 넓은 밭이 딸려 있고 수백평 마당 앞에 또 넓은 집터이어서 수 종류의 유실수와 관목 등이 많이 있었었다.

 

앞마당에는 잎이 무척 넓어 여름철에 그늘을 주던 큰 오동나무와 노란열매가 익어 떨어졌을 때 밝으면 풍기는 구린내가 고약하나 알이 맛있는 은행나무. 봄 한 철은 우아하고 품위 있는 매화나무. 거미줄이 무던히도 많이 끼이던 무궁화나무. 담장과 더불어 노란 꽃을 피우던 개나리 등이 있었고, 뒤 밭에는 풋살구를 따먹고 입안이 시그리워 하던 살구나무. 배나무. 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먹고 입과 옷을 버려 꾸중을 듣도록 하던 뽕나무를 비롯하여, 가을이면 붉은 감을 주렁주렁 달고 있던 오래 된 감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며, 가을이 되면 터진 껍질 사이로 빨간 알들이 싱그럽게 익어 입맛을 돋우는 석류나무와 꼬마감이라 불리며 검붉고 황색 또는 암자색의 둥글고 작은 앙증스러운 열매를 여는 기욤나무 등등, 뒷 울타리 밑에는 가시와 가시털 융털이 많았으나 5~7월에 짙은 홍색의 아름답고 조그마한 꽃이 피는 관목인 해당화도 아련한 기억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꽃이다.

 

사람이 사는 집은 대개 넓거나 좁은 마당이 있고 마당은 거주하는 사람의 사적인 공간인 동시에 공적인 공간이었기에 때로는 가족끼리 세상사 가정사 개인사를 나누고, 동네 이웃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소통의 장소라 사람에게는 삶의 활력을 재충전하는 좋은 공간이다, 그러나 도심 단독주택은 마당이 있기는 하지만 높은 담과 철문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마당은 마당이 아니라 집주인만의 정원으로 역할을 다하는 마당이다. 그러나 시멘트 집인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게는 마당이 없다는 것은 이웃과 공동체를 모두 잃었기에 더욱 불행한 일이라 하겠다.

 

사람이 살다보면 골목 모퉁이 이층집 마당에 서있던 소박한 감나무가 해마다 봄이 되면 잎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여름 가을이 가면 잎이 떨어지고 다음해에 다시 반복하듯이 우리 인생도 그러하다, 그러다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노라면 우리 사람도 만남이 오면 이별이 오고 이별이 오면 만남이 오듯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하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 사람은 대게 일백여년 한 생을 살아가지만 사람은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고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한 생에서 시간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은 것과 같이 한 번 잃으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는데, 놓치지 말고 질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이듯이 사람으로 태어나면 감나무가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잎을 떨구고 하며 자기할 일을 다 하듯이 사람도 자기가 사는 사회에 책무를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람의 삶에서 저물어 가는 황혼이 되면 가는 순서 없다, 어느 날 예고도 소리도 없이 훌쩍 떠날 때에는​ 사랑도 미움도 가져갈 것 하나 없는 빈손에다 동행하여 줄 사람 하나 없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마음 다하여 살다가 가슴에 묻어둔 아픔이 남아 있다면 미련 없이 다 떨쳐 버리고, 나 아닌 남는 내 반쪽만이라도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기를 염원하며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마무리 하고 가고 싶어만 지는 것 또한 인생이 아닌가 한다.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세월이 어떻게 흘러 왔는지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시간들이 젊음이 어느덧 내 곁을 떠나갔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라는 작은 시냇물이 모아져 세월이라는 강물을 만들고 바다로 흘러들어 감은, 삶이라는 세월의 흐름을 따라 사람도 삶이란 바다로 흘러 들어가듯 삶이란 끊임없이 흘러감을 느끼게 한다, 세월이란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사람들은 말(言)로나 글(文)로 유수같이 흐른다고들 하며 세월은 빠르게 흘러간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생각하기에 따라 찰나(刹那)라고도 생각할 수가 있기도 하며 때로는 지긋지긋하도록 오랜 시간이기도 한 것이 우리네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