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스크랩] 아늑한 어머님 젖가슴이 그립다.

碧 珍(日德 靑竹) 2017. 4. 10. 08:04

 

 

 

아늑한 어머님 젖가슴이 그립다.

 

 

 

 

 

세월이 무심하게 흘러가기를 더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생각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깊어만 지면서 나름대로 마음은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쓸쓸하기에, 큰 아해는 산거(山居)를 찾거나 사찰에 들러 명부전(冥府殿)에서 기도하고 오는 것이 위로가 되었던 때도 많았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변해도 물질문화가 정신문화를 앞질러 간다하여도 변할 수 없는 것은 父母에 대한 孝行이다. 우리는 어데서 누구로부터 이 몸을 받아 이 세상에 왔는가, 인연 중에 부모와 자식의 만남은 참으로 고귀하고 중한 인연이다, 지금도 눈을 감고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면 과연 효성을 다 하여까 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한 없이 죄송스럽고 송구스럽기만 한 마음이다.

 

살면서 늘 들어도 늘 정다웁고 그리운 말 중에어머님이란 말보다 가슴에 와 닫는 말이 있는가, 어머님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언제나 후하며 무엇인가 가슴이 뭉클하여지게 하는 포근하고 아늑한 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워지면 지난 온 날에 대한 온갖 추억과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다가옵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어머님 생각에 이어 고향산천이 눈에 선하며 지난날 어머님과 더불어 여름밤이면 햇감자와 옥수수 쪄먹고 보릿짚과 쑥으로 모깃불을 피워놓고, 온가족이 평상 위에 벌렁 누워 하늘을 보며 저별은 외할머님별 아빠엄마별 저별은 나의별 하며 별을 헤아리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니 이제 고희(古稀)를 지나 여러 해를 넘겼으니 많이 살아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근래 들어 세월 탓인가 나이 탓인가 잠자리에 들면 어머님 모습과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산천과 소꿉(불알)동무 죽마(竹馬)타던 옛날 동무들이 자주 나타나고 그립고 보고파진다.

 

고향에 봄이 오면 흰 찔레꽃이 온 들과 방천 둑에 피고 굶주림을 걱정하는 보릿고개가 어김없이 다가온다, 산과 들에 나물 캐는 아낙네와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뫼(墓)가에 붉은 할미꽃과 연분홍 보랏빛 참꽃(진달래)따려 해매이고 들에 파릇파릇한 풀들의 새싹이 돋고 나면, 山과 들녁은 완연히 푸르고 녹음이 짙어 가면 여름이 찾아오고, 앞 시내가 수양버들이 연 녹색 가지를 물위에 드리우고, 뒷골 못으로 고추를 내어 놓고 미역(수영)감으로 다니며 수박서리도 하며 즐거워하던 불알동무들이 그리웁고 보고파진다. 

 

연보라 빛 흰 들국화가 들녘에 내음을 널리 휘날리고 논밭이 누렇게 빛을 발하며 나락(벼) 밀이 머리가 무거워 고개를 숙이는 가을이 오면,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남몰래 양대(콩의 일종). 누렁호박과밀 싸리에다 능금서리 하던 그 시절도 잊을 수 없이 회상되고 한다, 어느 날 자고나면 온 천지가 흰 눈으로 덮이고 초가 처마 끝에 고드름이 열리며 입에서 하얀 김이 나는 겨울이 되면, 물을 가득채운 논으로 못으로 썰매를 지치다가 논두렁 가에서 짚불을 놓아 시린 손을 쪼여 녹이던 그 시절 죽마고우들이 그립다네, 아니 보고 싶어진다. 왜 이러히도 이 새벽에 그 때가 생각나는지 어머님이 고향이 그리워지기만 한다.

 

조선 인조 때의 고승으로 부처의 小化身으로 불렸던 진묵대사(震默大師)는 한국 불교사에서는 드물게 실천적 실존주의자로 실천불교의 선구자로 유명하나, 그보다 효성이 남달라 출가 후에도 어머님을 모시고 효성을 다하였다고 전하는 승려이시다,

 

당시 진묵대사가태중(胎中) 열 달의 은혜 어찌 갚사오며 슬하(膝下) 3년동안 길러주신 은혜 잊을 수 없도다만, 만세위에 만세를 더 사신다 해도 자식의 마음 여한이 온데 백년도 다하지 못하고 떠나가신 어머님 명은 어찌 그리도 짧은 신가요.라고, 당시 진묵대사가 노모의 왕생극락을 빌며 영전에 바친49제 제사 축문(祝文)의 일부인데, 이를 보면 그의 애틋한 효성을 알 수가 있다, 이축문은 진묵대사의 어머니 묘소가 있는 김제시 만경면 화포리 성모암(聖母庵) 묘소 앞에 자리하고 있는 비석에 새겨진 절절한 효심을 담은 명문이라 적어보며 마음 깊이 새긴다.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Sigmund Freud는 1920년 정신분석 용어로서 처음으로 쓴 말인, 에로스(Eros)는 生命의 극한, 즉 生의 본능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의 극한인 타나토스(Thanatos)는 죽음(死)의 본능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랑을 찾아 生의 의욕을 다지는 Eros적인 면과,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Thanatos적인 면을 동시에 사람은 지니고 있다, 이 둘의 모순은 서로 충돌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는 것이 우리 사람인 것이다. 그러기에 바로 그가 그렇듯이,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못 잊어하는 것인가, 우리 사람은 生과 死의 양면에서 질기게 살아가고 있다가 한 점 구름이 바람에 밀려가듯이 가는 것이 우리 사람의 一生이 人生인 것이듯, 어머님은 이 아해의 일생이자 인생이었다.

 

청명. 곡우를 지난 따사한 밤 삼경(三更),

  “시름에 잠기인체 삼경에 창가 앉아 회상 속서 헤매 이다가

    무릇 세상사 인간사 되돌아가며 무명안개 속으로 잠기어서

    그립고 아쉬운 生과 더불어 못다 한 삶으로 방황을 하다가

    스치는 바람에 깨니 마음은 비었고 중천에 반달만 떠있네. 라고 쓰고 나니, 가슴 한편에 화엄경(華嚴經)이 들려 있고 어머님의 사랑이 마음가득하여져 있다.

 

어머님, 이 새벽 이 아해의 마음은 오늘도 서울행 KTX에 올라 낙동강 철교를 지나면서 차창 밖 전개되는 아침 안개와 들녘 논밭. 산하(山河)를 보면서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하겠지, 그러면 어린 시절 고향 星州집과 논밭의 풍경이 떠오르며 외할머님의 인자하신 웃음과 일꾼들에게 고함치던 모습에다 농사 애기가 귀전에 맴돌아 가슴을 아려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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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은중경

 

 

 

출처 : 벽진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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