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春을 앞두고.  세월 따라 년 말 막장 달력을 넘길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게 사람인가보다, 눈 내린 차가운 윗녁 山居에 계시는 어머님이 그리워선지, 오전동 그 사람과 함께 살고파서인지, 아니 아이들이 보고파서인지, 저 세상에 있는 잊지 못하는 막역지우(莫逆之友)의 생각이 떠올라서인지, 가는 해가 아쉽기만 하고 오는 해도 반갑지만 않은 게 지금의 생각이고 느낌이다. 왜, 그럴까?, 들어가는 나이 탓 일까. 해마다 小雪이 지나면 15일여 간격으로 大雪이 오고 지나면 冬至가 오고 그리고 몇 날이 흐르면‘섣달그믐’이 오고, 그 뒤 小寒, 大寒지나 음력설을 전후하여 24절기의 시작이자 봄의 문턱인 立春이 오고 지난 뒤, 개구리도 뛰어 나오는 경칩(驚蟄)이 오면 완연히 봄이 되는 계절의 변화는 天地自然의 큰 섭리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는 천지자연의 섭리 중 절후(節侯-節氣)라는 것은 무서울 만큼 정직한 자연의 한 현상이다. 이곳 大邱도 연일 영하 6~7도를 넘나드는 立春 추위가 몰아치고 있으나 아무리 춥다는 겨울도 오는 봄을 막지 못하기에 3일후 이면 立春으로 기쁘지도 않은 봄을 또 맞는다. 금아 피천득(琴兒 皮千得)선생은‘신춘(新春)’이란 그의 글에서 ‘1월은 기온으로 보면 확실히 겨울의 한 고비다. 그러나 1월이 되면 새봄은 온 것이다. 자정이 넘으면 날이 캄캄해도 새벽이 된 거와 같이,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1월은 봄이다.’ 라고 겨울이 가고 이르게 오는 새봄을 맞이하는 봄의 설렘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이를 때쯤이면 섣달에 피는 매화(梅花)라는 뜻의‘납매(臘梅)’가 남쪽 지방에서 매혹적인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자그마하고 앙증맞은 노란색 꽃을 피우며 이른 봄소식을 전하는데, 납매는 추위를 뚫고 겨울에 찾아오는 손님에 비유하여 한객(寒客)이라고 도 불리는 말이라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 중 하나이다. 立春을 두고 사람들은 봄의 전령사로 24절기 중 가장 춥다는 대한. 소한을 지난 터라 山河 곳곳 땅속 물속 깊은 곳에서 봄이 싹트는 소리가 들리는 시기로, 매섭고 혹독한 추위가 닥쳐도 立春을 지나면 봄은 생명과 희망을 大地위에도 사람의 가슴속에도 심어주고 적셔주고 뿌려준다, 그래서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봄은 생명과 희망의 첫 단추로 통하여 왔었다. 우리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새봄을 맞아 봄볕을 유년에서 청장년으로 성년으로, 성년에서 다시 노년으로 인생이 시들어 가면서 평생을 맞으며 사는 인간들이건만, 그렇다고 늙음이 다시 젊음으로 되돌아가도록 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 인생노정(人生路程)에서 중년기를 지나면 西山에 넘어가는 해를 보듯이 인생에서 그간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며 조용히 살아온 지난 삶과 남은 삶을 관조(觀照)하는 老年期를 느끼게 되면 삶을 마무리 하게 되는 것이 우리 사람의 한 生(一代)인 것이다. 요즈음 들어 가능한 잠을 많이 자려고 애를 쓰고 있다 보니 잠시라도 누웠다가 잠이 들어 깨어나니 눈과 몸의 피곤함이 가시어 많은 잠을 잔 것 같은 이 새벽녘, 창을 열고 하늘을 보니 구름이 끼어서 그런지 달도 별도 보이지 않고 써늘한 바람만 반가이 맞아주는 子夜(三更)는 넘었고, 벌써 戊夜(五更)인가 생각하며 새벽예불을 하고자 자리를 잡고 눈을 감으면 지난 온 날들이 떠오르며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우리 사람에게 인생의 황혼은 우리네 인생길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든 가시 발길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걸어온 인생여정은 왜 그리도 험난하였고 회한(悔恨)으로 얼룩진 한 많은 세월이 많았을까?. 인생을 사람이 느끼기에 따라 길고 짧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시간(時間)이며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부여되는 것이 시간이기에, 그래서 즐거운 시간은 길어도 짧을 것이며 어렵고 괴로운 시간은 짧아도 긴 것 같으므로,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사람이 행복한 것인지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사람이 행복한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게 시간에 대한 개념이다. 그러기에 늙어서도 불행하다면 젊은 시절 자기 생각과 삶의 행태에 스스로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지, 그것이 운명(運命)이니 숙명(宿命)이니 재수가 없었다니 제3에 그 원인을 찾는 다는 것은 끝까지 자기기만이고 옳지 못한 무책임한 행태라고 스스로 알아야만 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 하겠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국가나 사회나 가족이나 이웃은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인데도, 이들은 자신의 잘못된 인생사를 되돌아보지 않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기가 일수이다. 이제 칠십 여를 넘은 생을 살고 난후 비로써 스스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 그것이 바로 진실한 法道이자 부처님의 마음이며 중생들의 참 마음임을 알게 되는 것인가, 즉‘마침내 부처님을 알고 부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究竟知佛愛佛)’는 심정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佛心이 마음으로 와도 佛心이 마음으로 오지 않은 것 같다는 佛心來不似佛心의 삶은 안 되어야 하겠다. 우리가 老人은 오래 산다(長壽)는 의미를 단순하게 산다는 것보다, 어떻게 남은 삶을 지혜롭게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 不失其所者久(불실기소자구) / 제자리를 잃지 않은 자가 오래가고 死而不忘者壽(사이불망자수) / 죽어도 잊어지지 않은 자가 오래 산다. 는 老子의 33장에 있는 말씀이 생각나는 이아침을 또 맞이하며 오늘 하루를 열어가는 게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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