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벼슬하면 땅이나 밭을 사지 않는다”

碧 珍(日德 靑竹) 2008. 11. 30. 16:44

“벼슬하면 땅이나 밭을 사지 않는다”

전주 류씨 종중 8가지 삶의 지침 ‘팔약조’ 화제
350여 년간 대대로 교훈 삼아 실천
오늘날 공직자 수칙으로 손색 없어

 “조선 중기 당파 싸움으로 참화를 겪은 뒤 관련 집안 선비들이 모여 만든 게 팔약조(八約條)입니다. 정쟁을 멀리하고 학문에 전념하며 지혜롭게 살 것을 다짐하면서 후손들에게 제시한 삶의 여덟 가지 지침이지요. ‘벼슬 하고 있을 때는 땅이나 밭을 사지 않는다’ ‘사사로운 곳에서 공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는 항목은 3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공직자들의 수칙으로 삼아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전주 류씨 전양부원군 종중’의 류양석(82·의학박사·사진) 회장은 대대로 내려온 팔약조를 돌에 새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류 회장은 14일 낮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의 전주 류씨 오대봉군 묘역에 있는 전양부원군 류영경의 묘소 앞에 팔약조비를 세웠다.

◆350여 년간 소북 후손의 지침이 된 팔약조=전양부원군은 1550년(명종 5)에 태어나 1608년(광해군 원년)까지 살았던 문신이다. 소북(小北)파의 영수(領袖)였던 그는 선조 말에 영의정에 올랐다. 하지만 선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대북(大北)파의 탄핵으로 경흥에 유배됐다가 사사(賜死: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남)됐다. 그 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관작이 복구됐다. 그의 400주기인 이날 후손들이 추념식을 열면서 팔약조비를 세운 것이다. 팔약조는 전양부원군이 세상을 떠난 지 49년 뒤인 효종 8년(1657년) 만들어졌다. 소북 후손 34명이 모여 정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얻었던 교훈을 바탕으로 선비 집안의 철학을 명문화한 것이다. 이 집안은 팔약조의 교훈을 잘 실천한 덕분인지 그 뒤 수많은 학자와 문장가를 배출했다.

200여 명이 모인 이날 행사에서 류 회장은 “선조의 유훈을 받들어 집안의 훌륭한 역사와 정신이 영원히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결의의 표시로 팔약조비를 세웠다”며 “351년 전에 만들었지만 정치·교육·문화·경제·사회적으로 오늘날에도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 덕목이 모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과 나라가 바로 서려면 시대가 바뀌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철학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가 팔약조의 정신을 후손들에게 이어주기 위해 비를 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400년 넘은 소북 후손 모임=이날 행사에는 409년 전에 결성된 소북 후손 모임인 ‘동일회(同一會)’ 회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동일회는 선조 32년(1599년)에 생겨 지금까지 맥을 잇고 있다. 소북 후손인 28성(姓)·69가(家)가 혼인으로 혈연관계를 맺으며 칡넝쿨처럼 얽혀 있다. 그래서 모임의 결속력이 남다르다. 팔약조 정신은 소북 영수의 후손인 전주 류씨 집안은 물론 동일회 회원가 전체에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일회는 지금도 매달 둘째 화요일에 모임을 열어 조상의 정신을 계승해 나가고 있다. 3·1운동 직후인 1920년 남규희 등 37명은 동일회를 현대적 모임으로 재결성, 민족의식 고취의 장으로도 활용했다.

동일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류 회장은 “조선시대 당(黨)은 학문적인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며 “일제는 당파를 사색당쟁으로 폄하했지만, 우리는 조선왕조 때 이미 민주적인 정당정치를 해 왔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전익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