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투병중인 친구의 전화를 받고

碧 珍(日德 靑竹) 2019. 10. 26. 22:27

 

 

 

투병중인 친구의 전화를 받고.

 

 

일 년 중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을 하루 앞둔 오전 무렵 늦다 없이 휴대폰이 울리기에 받으니 투병중인 莫逆之友 虛凈의 목소리가 전화를 통하여 맑고 커서, 어느 정도 건강이 좋아졌구나 하며 얼른 받으니 점심을 같이 할 수 있겠냐고 의외의 말에그래 좋아하고나니 청천벽력이라기보다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虛凈과는 中學校 때 맺은 인연(因緣)으로 어언 육십 사오여년이란 긴 세월 속에서 자주 만나 박주(薄酒) 잔을 나누던 막역한 벗이자 동창 친구로 둘은 술을 좋아하다보니 술친구이기도 하다. 지금 건강 악화로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가 퇴원하여 집에서 일주일에 세 번 여를 등원치료 하는 그런 虛凈이 늦다 없이 점심을 먹자고 하니,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식사를 가려하여야 하는데 혹여 하는 마음이 들어 편하지만 않았다.

 

虛凈은 투병중이라 걷기가 그리 원만하지 못하며 먹는 음식도 많은 주의를 요하기에 그의 집 근처 식당으로 가기로 약속하고,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니 벌써 나와 기다리고 있어 보는 순간 반갑기도 하였으나 좀 여윈 모습에 마음이 언짢았으나 웃으며 그가 치료 중이라 금하는 음식이 있기에 그가 가고픈 식당으로 가자고 하였다. 虛凈이 치료 중이라 그가 원하는 쌀국수를 주문하고 이.저 이야기를 나누며 그릇을 비웠다, 잘 먹는 것을 보니 반가웠으나 혹여 과식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앞섰다.

 

우리는 식사를 마친 후 Cafe로 자리를 옮겨 앉으니 虛凈은 black coffee를 먹어야 체중을 조정할 수 있다기에 주문하여 마시며 그간 투병생활과 향후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간 우리 동창 친구들 간에 있었던 애기와 술 이야기로 꽃피우던 중, 늦다 없이 다음 慶睦 居士林 모임에 참석하고 싶다고 하기에 다음 달은 虛凈의 집근처 식당을 알아보고 하겠다고 화답을 하였다.

 

虛凈이 입원하기 전에는 愛酒家인 우리는 한 주일에 두세 번 만나며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서 세월을 즐겼던 친구라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빨리 완쾌하여 전날들처럼 함께 다시 박주(薄酒)를 나누며 남은 날들을 즐기며 살고 싶은 심정이다, 과연 그런 날이 언제 다시 올 것인가 기다려지는 마음이다. 아무튼 虛凈을 만나 식사와 커피를 마시며 이.저 애기들을 주고받다보니 세 시간여 지났기에 헤어지면서 조속한 완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 하고, 귀가하는 차에 오르고 보니 한편으로는 그래도 건강하여진 모습이라 좋았지만 그래도 치료가 잘 되어야 하고 걱정이 앞서니 살만큼 살았다고 하지만 노년의 서글픔이 앞서 엄습한다. 

 

세월이 흘러 희수(稀壽)를 들면서 살아온 지난날들을 생각하다보면 천진무구하다 보니 아무런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순수하고 참되게 말하고 행동하던 때인 초.중.고등 동기 동창 친구들과 그간 살아오는 동안 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인생을 살았다고 하여도 빈말은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사람은 살면서 자연스레 정과 믿음이 가는 동창. 친구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친구도 있기 마련인 것이 사람이고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이다.

 

친구(親舊)란 정다운 애기를 하며 흐르는 시냇물처럼 늘 따뜻한 정이 마음 한 줄기 되어 고요하게 가슴으로 흐르는 것이 진실한 친구가, 날마다 만나도 날마다 만나지 않아도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고요히 흐르는 물처럼 늘 가슴 한편으로 말없이 잔잔한 그리움으로 밀려오는 친구가, 멀리 있어도 마음으로 의지하고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동반자 같은 친구가 진정한 마음의 친구입니다. 언제나 늘 오늘처럼 살아가는 동안 같이 아파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喜怒哀樂을 같이 할 수 있는 芝蘭之交 같은 그런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옛날 사람들은 友情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남겨놓았다. 한문에서는 진정한 親舊를지기(知己)라고 일컫는다. 知己란 곧,나를 알아주는 자란 뜻이다, 우리는 竹馬之故友 등 인생에서 많은 친구를 갖는다, 그러나 知己는 새벽별처럼 드물다. 知己를 또한막역(莫逆)의 벗이라고도 한다. 또 한문에서는 친밀(親密)한 友情을 말할 때금란(金蘭)의 벗이라고도 한다.

 

사람에게 소중한 것 중 제일인 사람의 명(命)이란 인위적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고 자연섭리에 따르기 때문에 인명은 在天이라고 하는가 보다. 이제 소중한 벗들이 노년 질환으로 하나 둘 가거나 자리에 눕거나 거동이 불편하여 두문불출하니 볼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지나온 날 어울려 박주(薄酒) 잔 주고받으며 지난 학창시절부터 시작하여 가정사 사회생활 등 그간 살아온 이야기에다 정치 이야기까지 곁들여 우정을 나누던 그 시간들이 마냥 그리울 뿐이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모두가 아쉬운 일만 가슴에 남아 잊지 못할 막역지우(莫逆之友) 중 한 사람으로 와병중인 虛淨의 얼굴이 잊을만하면 떠올라 이따금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날, 날마다 올리는 새벽 禮佛이라 여느 때처럼 올리는 중 來世에서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가 부처님께 매일 올리는 예불하는 마음은 외조모님 부모님의 극악왕생을 기원하고, 가족과 그 사람 등 소중한 인연들의 안녕을 위하여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바라는 마음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히 살다가보니 어언 산천이 칠십 일곱 번이나 바뀌고 변화하였음 이 새벽 새삼스럽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이따금 살면서 생각나는 게 지난 세월보다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짧다는 느낌 때문일까, 사람은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갈수록 잊혀 지기만하는 따뜻하고 소박한 정을 그리워하며 다정다감하였던 인연들이 보고파지는 게 노년의 마음인가 보다.

 

사람이란 바람처럼 무심하게 와서 잠시 머물다가 바람 따라 가는 구름처럼 덧없이 흘러 다니다가, 한 줄기 비 뿌리듯이 팔고(八苦) 아픔을 주고서 홀연히 떠나버리는 게 인생인 것이다, 사람은 태어 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인연(因緣)들과 만나고 이별할 때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사요 세상사요 자연의 섭리요 萬古不變眞理이니, 虛淨과 나, 친구 인연도 덧없이 바람처럼 흘러가는 게 사람의 삶이기에 一場春夢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