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단상.
앞산에 눈이 녹고 얼어붙었던 땅이 녹을 즈음이면 누구나 봄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우리 곁으로, 따사한 봄바람 따라 매화(梅花) 향 풋풋한 내음과 더불어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우리 곁에 있다. 그러면 그리운 사람들 보고픈 인연들 생각에 곧잘 잠기며 즐거웠던 행복하였던 그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 아쉬워하는 가슴에는 애절함으로 쌓여 지기만 한다.
오고가는 年年世世 24절후의 변화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음 볼 때 자연의 섭리는 무서울 만큼 정직하다. 매화(梅花)는 엄동설한 지나 이른 봄에 걸쳐 하얗고 붉은 꽃잎을 터뜨리며 맑고 그윽한 향기 암향(暗香)을 퍼뜨리는 존재로 새해가 밝아오면 어떤 설렘으로 기다려지는 꽃이‘매화(梅花)’이다.
梅花는 고목에 한두 송이 피어있는 고매(古梅)와 음지에는 청아한 녹색 몽우리를 품고 있는 녹악매(綠萼梅)등이 있는데, 모든 매화는 아름답지만 법당 앞마당에 오래된 홍매화(紅梅花)가 만발한 풍경과 그 향(香)은 거의 환상적으로 고결하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梅花의 향이 고결한 만큼 그렇듯이 오늘 아침을 먹을 때 자주 접하는 토종 참깨(芝麻)로 짠 참기름 향도 빼놓을 수 없다.
참기름에 관하여 나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戊戌 冬至를 앞둔 추운 어느 날 오후 그렇지 않아도 燒酒한잔 생각이 나던 중 知己之友 醉雲 金完照 仁兄이 한잔 하자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그의 집 근처로 가 둘이 燒酒盞을 주고받고 하며 그간 주변에 일어났던 잡다한 애기를 나누고 헤어지는데, 느닷없이 종이로 싼 병하나를 주며 잘 먹으라고 하기에 되물으니 토종 참기름이라고 하였다.
느닷없이 知己之友가 불쑥 주는 참기름이라 받기는 받아도 어리둥절하기만 하였다. 오래 동안 혼자 살고 있는 친구를 배려하여 주는 토종 참기름이라 고맙기도 하지만 우정 어린 깊은 사려에 대하여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되돌아보니 지난 2017년에 醉雲이 구수한 입담에 자기수련에 대한 사연을 얘기와 더불어 맛있게 술잔을 기울이며 佛者인 그에게 준‘火生蓮(火生蓮)’이란 판각(板刻)작품을 이어, 지난 2017. 10월 칠곡 소재 한 대포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불쑥 넘겨준 自作漢詩‘山村春日’에다, 반년여 넘어 2018. 3월 보내어 온 醉雲의 중년시절 한 여인을 戀慕하는 마음을 표현한‘湫沼里遺情(추소리유정)’은 세 번째로 준 漢詩 선물이라 기쁜 마음 그지없이 한숨에 읽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 후 2018. 7월 어느 날 醉雲을 한 대포집에서 만나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지나온 날들을 애기하다가 지난번 그에게 준 醉雲의 自作漢詩에 어어 준‘人生’과‘又春盡(우춘진. 또 봄이 끝나는 구나)’두首를 받아 감명 깊게 독송하였었던 게 그제께 같은데 이렇게 좋은 토종 참기름을 또다시 받으니 마음 둘 데가 없다.
아무튼 醉雲의 품성이나 사려 깊은 인격을 볼 때 그의 詩‘人生’에서는‘人生一去弗來還’즉 인생이란 한번가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며 백년도 체 못사는 인생의 무상함을, 끝 연에서‘誰知夢裏飮神仙, 즉 누가 알리요 꿈에서 신선과 술 마시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자신의 올곧은 심정을 그렸고, 이어‘又春盡(우춘진. 또 봄이 끝나는구나)’에서는‘春盡花園蝶不來, 즉 봄이 다하니 꽃동산에 나비 날아오지 않는다’며 세월 따라 늙음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끝 연에서‘無妄老妻井下醅, 즉 마음 너그러운 늙은 아내 우물에서 술을 빚고 있다’며 인생 허망함을 그리며 인생을 노래하였으나, 너무 비약적인가하고 생각타보니 참으로 올곧은 醉雲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가 있는 知己之友란 것이 무한한 행복감을 주니 참기름 맛을 어디다 비교할 수가 있을까 한다.
아무튼 그는 행복한 삶을 지금 살고 있다, 인생 황혼 무렵에 그래도 외롭게 늙어 가는 그의 곁에 머무르며 이해하여주는 벗도 伴侶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 그가 살아 갈 수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자 복이 아닐 수가 없기에 늘‘고마움’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게 지금의 자화상이다. 그런데도 늘 ‘고맙다’ 고 느끼면서도 그를 아껴주고 이해하여주던 사람들에게 제대로 고마움을 표시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는 먹을 복이 많은 타고난 사람인가보다, 어린 시절에는 외할머님이 지은 농산물에다 솜씨로 맛있게 먹었었고, 노년에는 친구들과 그 사람 덕에 다시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고 행복한 삶이 아닌가 한다.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면서 고마움을 느끼는 마음과 눈으로 세상 주위를 보면 세상은 온통 고마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참 행복이 무엇인가?, 참 행복이란 자기가 충분히 만족하다고 느꼈을 때 또는 기쁘거나 좋다고 생각을 하였을 때, 또한 사랑하는 가족과 서로가 아끼고 위하여주고 이해 하여주는 벗이 있고 자기가 건강할 때가 참 행복이다.
醉雲,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세월이 흘러 먼 훗날이 되어도 가슴 속 깊이 새겨져 있고 아름답게 남아 있는 것은 그리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운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를 세월이 흐른 후에야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되돌아보니 세상의 어지러움과 온갖 곤란을 겪게 되는 백수풍진(白首風塵)세상을 벌서 외길 칠십육 년을 살고 보내다보니, 세상사 인간사 쉬운 삶이라 하기보다 어렵고 세월에 끌려 살아왔다는 회한이 휴복(休福)보다도 가득한가 보니 하잘 것 없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나 하고 생각이 드나, 건강하게 잘 살아 달라고 준 토종 참기름의 깊은 맛에 담은 知己之友의 참다운 마음과 깊은 뜻을 오래오래 간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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