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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가 故 朴 대통령 흔적이나 지우는 막가다 國民인가.

碧 珍(日德 靑竹) 2018. 9. 6. 11:14

 

우리가 故 朴 대통령 흔적이나 지우는 막가다 國民인가.

              - 역사 무시하는 국가와 국민에게는 미래란 있을 수 없다.

 

 

(1).

아무리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사람으로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이 있다, 故 朴正熙 대통령 역사자료관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기로 한 경북 구미시(慶北 龜尾市) 결정은 매우 잘못되었다기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자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故 朴正熙 大統領 태어나고 生家가 있으며 지역을 발전시킨 慶北 龜尾市가 상모동에 신축 중인朴正熙 대통령 역사자료관명칭에서朴正熙이름을 빼기로 사실상 결정하였다는 소식에다, 그 대신구미 근현대사 박물관,구미 공영박물관같은 명칭으로 개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大邱에서 발간하는 每日新聞 사설과 기사를 보고 말문이 막히고 분노가 치솟았다.

 

오는 2019년 연말 준공 예정인 朴正熙 대통령 역사자료관에는 朴 대통령 유품 5천670점이 전시된다고 하는데, 뜬금없이 구미시가 삼성, LG가 구미공단에서 만든 최초의 제품 등을 전시물에 추가한다고 하였지만, 거의 모든 전시물은 국내외에서 선물로 받아 보관하거나 직접 사용하던 물건들은 朴 대통령의 유품이다. 아무튼 朴 대통령의 유품을 엉뚱한 이름을 단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현재 朴정희 대통영의 유품들은 지난 2004년부터 구미시 선산읍 구미시청 선산출장소에 보관 중이다.

 

朴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은 구미시 상모동 朴 전 대통령 생가 옆에 대지면적 7만7천21㎡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전시장과 전문박물관 등을 사업비 200억원을 들여 2019년 연말 준공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며, 그동안 구미시는 朴 전 대통령의 생가와 동상을 조성하는 등 朴 전 대통령 업적 홍보에 앞장서 왔었다.

 

되돌아보자, 구미는 朴정희 대통령 고향이고, 구미국가산업단지도 박 대통령이 만들어 구미가 내륙 최대 도시로 성장하는 기틀이 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박 대통령과 구미와의 인연과 그의 업적 등을 기리고자 生家옆에 만들고 있는 것이 역사자료관인데, 이를 무시하고 朴 대통령 흔적을 지운 박물관을 만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朴正熙 대통령 역사자료관 건립은 慶北. 全南 국회의원 모임인國會東西和合포럼(forum)이 2014년 嶺湖南 화합 차원에서 朴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사업을 제안하였었고, 따라 국비까지 투입되었고 공정률 20%인 사업을 일부 시민단체 반발을 이유로 애초 설립 취지와 전혀 다른 이름으로 바꾼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전국에 DJ, YS 이름을 단 기념관들이 수두룩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고향에서조차 朴 대통령 이름을 빼는 것은 大韓民國 國格(국격)을 의심케 하는 처사라는 것을 이념과 정파를 떠나 사람의 탈을 쓰고 있다면 이런 발상을 할 수가 없는 행태이다.

 

아무턴 朴정희 대통령은 공과(功過)를 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평가와 더불어 그 시대를 제대로 기록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역사 유산 기록보존 사업이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물을 마시면 그 근원을 생각하라(飮水思源)고 하였듯이 역사를 무시하고 지우는 나라와 민족에게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그러나 지난 6.13 지방선거 때부터 朴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건립을 놓고 논란이 일기 시작한 이후에도 선거에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張세용 구미시장은 朴정희 대통령 관련 각종 사업에 대해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왔으며, 또한 역사자료관 전시물도박 전 대통령 유품 외에 구미 근현대사 관련 유물, 삼성과 LG가 구미 공단에서 만든 최초의 제품 등이 더해질 예정이라 하는 가운데, 張 시장 취임이후 공사중단부터 폐관까지 각종 소문이 돌았었다.

 

문제는 朴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과 관련하여 구미참여연대는구미시가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의 용도를 변경하겠다고 해놓고 아직까지 명확한 발표가 없다. 지난 20여년간의 잘못된 행정을 과감히 혁신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면서, 구미참여연대는 지난 9월 3일박정희 기념사업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에 반하여 시민은구미는 박 전 대통령 고향이고, 구미국가산업단지도 박 전 대통령이 만들어 내륙 최대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이러한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기로 한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인데 갑자기 박 전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를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듯이 반대 여론도 매우 거세다고 한다. 그러자 구미시 관계자는명칭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내년 상반기쯤에 확정할 계획이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한번 돌이켜 보면 누가 생각하여 부끄럽고 수치스럽게도 살아있던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들의 기념관이나 도서관, 문화재단은 지을 줄 알면서, 故 건국 대통령 李承晩-근대화 산업화 朴正熙 대통령의 기념관 하나 없는 나라라는 것은 국가적 수치인데, 누구의 눈치를 본다고 건립하지 못하나, 아니 左派 눈치가 그렇게 두렵나 아니면 현 정부가 비협조적인 행태인가 참으로 답답한 爲政者들이고 政治人들인데 그리고도 국민의 대변자이며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한다고 말 할 수 있는가한다. 늦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나라도 마찬가지이기에 나라가 어려웠을 때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들, 즉 건국 대통령 李承晩-근대화 산업화 朴正熙 대통령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성숙한 국민과 건강한 국가가 우선하여 할 일이다.

 

 

(2)

무슨 사연들이 그리도 시간을 앗아갔는지 해마다 4월 말이 다되어 월력을 넘기다 보니 5월로 넘겨버렸다. 5월 초부터 6월 중순까지는 지난 1945년대부터 1970년 중반까지는 쓰라리며 참담하고 잔인했던 춘궁기(春窮期)시대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교육의 발달, 6.25 전재(戰災)복구 등을 우남(雩南) 李승만 대통령은 치적으로 남겼으나, 이에 반해 3.15 부정선거 자행과 시위 대열에 발포해 사상자를 낸 것, 국민방위군 부정사건, 탐관오리와 당파싸움 등 죄과에다, 헌법운영 잘못을 추가 죄로 열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분적으론 올바른 지적도 틀린 지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반론적으로는 아직도 유효한 李承晩 대통령에 대한 평가이다.

 

 

어느 나라이건 퇴임 대통령이란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임은 틀림없다, 대통령 재임 시의 업적과 과오 그 모두는 미래 국정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우리 냉철히 생각해보자, 그간 우리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건국 대통령을 잊고 살아 왔으며, 또 오늘날 우리는 현재 생존한 전 대통령들이 자신들의 기념관을 세우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우리국민은 8.15 해방을 거치며 6.25 남침이란 비극의 동족상쟁의 전쟁을 겪으며, 춘곤기인 보릿고개는 무엇보다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하던 일 년중 가장 비참하고 잔인한 계절이 춘궁기(麥嶺期)였음을 기억한다. 봄의 막바지인 하얀 들 찔레꽃이 피는 보릿고개 철이 되면, 집집마다 보리 한 톨. 옥수수 감자 한 알마저 떨어지는 때이었는데, 그래도 봄이라 山河에는 자연의 순리대로 백초가 돋아나고 꽃들이 다투어 피는데, 그중에 하얀 들 찔레꽃 피고, 논에 모를 심을 때부터 보리타작을 할 때까지는 보릿고개가 절정에 달한다.

 

오늘날 사십대 미만에게 民草들이 겪었던 배고픔의 서러움과 고통을 말하면, 아마 먼 나라 아프리카나 꿈속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도리어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다. 오늘날의 번영을 가능케 하는 기단을 세워, 경제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을 지나 선진국 반열에 발돋움을 하게 되므로, 오늘날 대다수 국민은 배고픔의 고통과 서러움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그들 젊은 혁명가들과 주도한 고 朴정희 대통령의 구국의 일념으로 부단한 개혁의 성공으로 인한 것이다.

 

당시 대학생. 지식인 층, 특히 左派 정치인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았으나, 강력하게 경제개혁을 주도하고 단행한 고 朴정희 대통령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년기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고 살아와 서민들의 배고픔과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 중 한사람이었다. 돌이켜 보면, 한나라의 운명과 국민들이 잘 살고 못사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를 만날 수가 있나 없는가에 따라 극명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서야 그 결과를 놓고 보면 이 평범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고 朴정희 대통령 시대에 우리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을 보아온 세대로서경제발전과 민족의 개념이 충돌하던’그 당시, 해마다 하얀 들 찔레꽃피던 늦봄은 우리 民草들에게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혼란하던 나날들이었으며, 참담한 배고픔의보릿고개시대이었다.

 

 

 

 

 

출처 : 벽진산방
글쓴이 : 碧珍(日德. 靑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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