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 단상(布施 斷想).
우리 人生은‘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空手來空手去)’라고 하는데, 이는 사람의 일생이 虛無함을 이르는 말이기도, 재물을 모으려고 너무 욕심을 내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욕심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든 고통은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오늘날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재물에 대한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시되고 있지만, 이런 와중에도 본인이 가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우리사회가 급격히 산업사회로 발전하여 가는 과정에서도 우리들의 사고와 가치관은, 짧은 기간 내에 바뀔 수없는 데서 오는 갈등이 우리 사회의 모든 세대에게 혼돈스러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한 례로 父母세대는 자식들로부터 독립을 희망하지만 한편으로는 노후(老後)문제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며, 자식(子息)세대는 핵가족을 원하면서도 부모에 대한 효도라는 부담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성숙되지 되지 못한 가치관이 지금의 변환기적 상황에서 모두가 희생자라 하겠다.
또한 돈 문제도 그렇다, 돈은 무덤에 갈 때까지 갖고 있어야 한다면‘죽어서 무덤에 갖고 갈 것도 아닌데 돈에 집착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으나, 현실적으로 보면 편안한 노후를 염두에 둔다면 그렇지 않다, 어쩌다보니 오늘 날은 돈이 있어야 자식에게도 대접을 받는다지마 자식을 나무랄 수 도 없는 것이 오늘의 세태인 것 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配慮)가 전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철을 예로 들면 음악이나 영상 큰소리 듣기, 큰소리로 통화하기, 옆 사람과 떠들고 웃기, 쩍 벌 남녀, 두 자리 앉기, 화장하는 여자들, 잡상인. 뛰어다니는 아이들 방관하기. 신발 신은 체 의자에 뛰어노는 아이 방관 등 그게 당연시 되어가는 것 같이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예절홍보대사도 아니고 지하철과 버스를 탈 때마다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는 방법을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가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순간 귀에 소음이 들려오고 한숨부터 쉬게 하는 등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는 예절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싫다고들 한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처럼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전화하거나 떠들거나 하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것이나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지도록 건네거나 베풀어 주거나 양보하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행하기가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문제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것은 중하고 귀하여 아까워하며 내어 놓지도 보시(布施)를 하지 않으면서도 말로만 포장하는 사람들, 즉 약자에 대하여 기부조차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큰소리를 치며 본인의 일신만을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고 아집과 기득권을 위하여 남을 위한 배려에는 인색한 존재가 아닐까한다.
우리, 너와 나는 모르는 사람이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웃 모든 사람에게 배려(配慮)가 의무나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남을 배려하면서 산다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배려(配慮)’란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주는 것을 뜻하고,‘나눔’은‘배푼다’는 의미이며, 나눔은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 사랑, 노동력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눔을 실현 할 수가 있듯이 나눔의 종류는 다양 하며, 나눔은 세상을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하여 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나눔의 문화’즉 기부문화(寄附文化)는 유명하고 부유한 재산가들만 할 수 있는‘물질적인 나눔’만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 그렇지는 않으며,‘정신적 육체적인 나눔’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보통 일반 사람도 나눔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무엇을 베푼다고 할 때 거기에는 당연히 어떤 물질적인 것이 상상 되는데, 특히 물질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베풀 수 있는(보시) 것은 당연히 재물(金)이나 물질을 떠나서는 생각 할 수 없지만, 세상에는 물질(재물)이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베풀 수가 있는데, 즉‘정신적 육체적’으로 베풀 수가 있는 것이 있다.
우리가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로 자비심(慈悲心)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佛法을 베풂이나 佛家에 재물을 바치는 것을‘보시(布施)’라 하며, 또한 남에게 돈이나, 물품, 福, 이익, 말씀 등을 베푸는 것을‘단시(檀施)’, 부처 앞에 음식물이나 재물 등을 바치는 것이나 음식이나 의복 등을 이바지하면서 웃어른을 모심, 승려가 하루 세끼 음식을 먹는 것을‘공양(供養)’이라고 한다.
우리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자기보존을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며 행하여 생산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남에 빌붙어 얻거나 해를 끼치며 더부살이로 살아가려는, 즉 기생(寄生)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생각하기보다는 우리 주위나 사회 도처에 참으로 많게 보인다.
그러기에 우리 사람은 누구나 시기하거나. 탐내거나. 욕심을 내거나 오만 하는 등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남을 배려하지 않고 오르지 자기만족만 생각하는 이기적 욕심과 집착으로 오는 번뇌는 마음의 병의 근원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지배하게 되므로 인하여 생기는 병으로, 받는 걸 무지 좋아하는 사람이나 남의 도움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이는 말인 마음의 병, 즉‘거지 근성’이다.
우리 人生은 누군가가 초대하지 않았어도 人生은 저 世上으로 부터 찾아왔고, 허락하지도 않아도 이 世上으로부터 떠나가듯이 찾아 온 것과 여히 떠나가는 것이 人生인 것이라 하겠다. 즉 佛家에서 말하듯이 한 목숨이 태어남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과 같고, 한 목숨이 죽어 감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뜬 구름은 그 자체는 본래부터 없는 것이듯, 人生의 오고 감도 그와 같은 것이라, 우리는 人生을 아웅다웅 살 이유가 없이 如如하게 人生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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