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스크랩] 기억속 素月의“진달래 꽃”.

碧 珍(日德 靑竹) 2017. 8. 12. 16:33

 

    기억속 素月의“진달래 꽃”.

     

      

              

     

     

     

    아련한 기억 속에 오색 무지개 마냥 그리운 추억으로 되새겨져 스스로 웃음 나는 철없던 소년시절을 마무리 하고, 어엿한 청년으로 되는 때 옛 일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있던 시절, K고교를 졸업하며 원하던 법대에 낙방하고 허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재수 준비하기 전, 잠시 고향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국교 친구의 누나이며 한살위이며 집안간도 잘 아는, 아릿다운 초임의 국교 여선생님과 인연 아닌 인연이 시작되어, 넓은 대지위에 있는 집이라 사랑채. 바깥채에는 누구 가 놀러 와도 안채에 계시는 부모님은 누가 왔는지 모를 수 가 많았다.

     

    어느 날 어머님과 선생님이 우연하게 마주치자 놀러 왔다는 인사말로 별일 없이 그날은 지나갔으나, 그 후 자주오고 선생님에게 자주 가니 어머님이 둘 사이를 이상하게 여기시다가, 재수를 해야 하는 재수생 입장을 강조하시며 간섭이 시작되다가, 급기야 대구 집으로 강제 퇴거를 당하는 모양세가 되었다.

     

    우선 대학이나 반듯하게 들어 간 후, 선생님과의 문제는 차후일로 하자는 부모님의 생각이 강하시어 재수생으로 부득하게 입시공부에 열중하게 되었으나, 부모님이 우려하신 데로 입학을 하고, 선생님과 만남도 다시 시작되니, 대학 진학문제로 마음이 편하지 못하시던 부모님은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계셨고, 선생님의 어머님과 둘 사이의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하다 보니 양가는 뒤 틀리게 되었다.

     

    고을 州(주)자가 붙은 우리 고향은 그 당시만 해도 좀 완고하고 보수적이며 반상의 문제를 많이 따지는 곳이라, 부모님은 맏아들이라 기대도 많으시고 집안을 책임 져야 한다는 등, 특히 우리 부모님 두 분께서는 독자이기에 홀 어머님 슬하에 자라고 바깥사돈 될 분이 없다는 이유로 강하게 선생님을 배척하게 되었고, 아울러 선생님의 어머님은 모여고 교감으로 재직 중이라, 아들의 친구이자 연하인 저와 교사라는 등, 여러 체면문제로 여선생님을 강하게 나무라고 감시가 심하고 우리의 만남을 적극 막고 있었다.

     

    그러던 그 여름방학 어느 날 해질 무렵 동산위에 있는 여고 숲 벤치에서 같이 있다가, 학교사택에 살고 있는 관계로 퇴근 하시다 우리를 본 선생님의 어머님은 딸을 보내고, 인생에 선배이며 梨花여전을 나온 박식한 분이라, 너희 둘은 맺어 질수 없는 인연이라며 설득이 시작 되었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그때 말씀 중에, 素月(김정식 시인)의 詩“진달래 꽃”에 대한 말씀으로, 젊은 시절 이 詩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을까.

     

    지금도 내 기억에서 떠나지 않은 그 때 말씀으로,

    “진달래 꽃”,첫 구절에 있는,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라는 구절의 해설과 설명이, 46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해설이라 생각되고, 그 후 여러 번 써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란 이 구절 중,

    <역겨워>에 대한 해설로,‘역겨워’란 말은 싫어서나. 사랑하지 않다는 등 부정적 의미, 시각이 아니라,

     

    인간관계(Human Relation)에서 살아가는데 모든 因緣(Cause and occasion)관계가 혼자. 둘만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 친지 등 인연 있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이므로 여건과 순리. 습관. 관행. 풍습에 역행하기보다,

     

    사랑하고 위하며 그리워하면서도 닿지 않은 인연, 이루지 못할 사랑과 만남이라 생각과 판단이 설 때는 麗人(려인)의 행복을 위해서 떠나 주어, 려인이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되기를 빌어 주기위하여, 지금은 아프고 괴로운 일이라도 감수하고 떠나보내 주는 것이 참 사랑 이라시며, 먼저 인생을 경험한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충고 내지 조언이니 이해를 바란다는 것과, 남자다운 용기와 생각을 하고 젊을 때 열심히 학업에 전념하여 우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 하라 시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시며, 시간만이 모든 것을 해결 한다”고 하신, 그 당시 설명이 바른 말씀이며 적절한 표현이라 지금도 느끼고 있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를,

    사랑하는 려인을 위하여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희생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시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는,

    떠나보내 줄 때는 남자다운 용기와 깨끗한 마음으로 진정 보내주어, 려인의 마음속에 오래 좋은 기억으로 살아 있도록 하라는 말씀으로,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는,

    헤어짐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나, 려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으로 생각하기보다 위하는 마음으로 앞날을 기원하여 주라는 말씀으로,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는,

    대장부답게 한낱 려인에 매여 연연하지 말고, 참고 견디어 청운의 꿈을 열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선생님과 인연은 맺을 수 없는 인연 이였음을, 서서히 마음에 자리를 매겨져 갔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름답고 여자다우며 재주가 다양했던 선생님을 잊기가 정말 어려웠었고, 청운의 꿈을 져버릴 수가 없는 나이와 상황이라 別離(별리)의 아픔도, 학창시절이라 연구실에서 마음으로 만끽 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 길에서 우연하게 만나 서로가 나이 들었음을 웃음으로 ,<많이 늙었네>로 인사하고, 헤어질 때 홍조 띤 그 아름다움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 마음이 설래 였던 것이며, 인연이 아닌 사람이라 마음으로 여생을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염원 할뿐, 이따금 기억속의 려인이 되어 버렸다.

     

    가끔 일이 있어 고향에 가면 그 옛날 거닐던 그 동산 위 숲을 볼 때마다, 선생님의 홍조 띤 예쁜 웃는 모습 얼굴이 아른 거렸으며. 과연 행복하고 한없는 삶을 살아 왔는지 생각하는 게 사람의 마음인가, 이제는 생을 정리하며 살아야 할 시점에서, 그에게 素月의“먼 후일”을 보내 드리고 싶다.

     

    <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

     

    .........중 략........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있고

    먼 후일, 그때에 "잊었노라"> 고,

     

    이제 46여년의 날이 지나고 보니 고인이 된. 그 사람의 어머니 가 하신 말씀인,“시간만이 藥이며, 시간만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도 사실인가 보다.

                                                   나무 관세음보살 碧 珍.

     

      


                         


 

 

출처 : 벽진산방
글쓴이 : 碧珍(日德. 靑竹)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