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못나 측은한 同窓에게 보내는 한마디. 結者解之도 못하는 사람은 老慾에 오만에 찬 사람이다. 
우리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많은 사람과 인간. 인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우리 사람은 만남이 오면 이별이 오고 이별이 오면 만남이 오듯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하는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즐거운 삶을 얻으면 또 잃기도 하고 슬픈 삶을 살다보면 즐거운 삶을 맞아 살듯이, 삶이란 무엇을 얻었는가 하면 무엇을 잃어버리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의 삶이 아닌가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별의별 소문(所聞)을 다 듣는데 우리나라 속담에‘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표현처럼 소문은 참으로 빠른 속도로 전파한다. 所聞이라 그것이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이든 아니든 이에 대하여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고, 때에 따라서는 소문의 내용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所聞만 믿고 행동했다가 크게 곤욕을 치르는 수도 있고, 소문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남보다 한발 앞서 행동함으로서 크게 이득을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소문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으니 유의 하여 들어야 할 것이다. 소주 대포를 한잔하다보니 친구 왈(曰)‘요사이 깜냥이 안 되는 놈이 많아 하며, 돈으로 입으로 깜냥을 커버(cover)할 수가 없는데도 머리 모자라 놈은 별 수 없어 한다’그리고 보니, 우리는 이따금‘깜냥’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쓰기도 하는데, 국어사전에 깜냥이란‘스스로 일을 헤아림. 또는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라 뜻을 풀이 하고 있다. 근래 들어 그래도 同窓인데 하고 되 뇌일 때가 있다, 古稀를 넘어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 살아오는 동안 그래도 가깝게 지내온 친구들은 사회나 직장에서 만나 사귀어온 친구들보다는, 同門修學한 친구들과 더불어 一生을 동고동락하고 희비애락을 나누며 많은 시간을 나름대로 보내며 인생을 살았다고 하여도 빈말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개의 사람은 오만(傲慢)으로 스스로 잘난 체하면 남들이 반드시 그를 헐뜯고, 그러기에 자만하고 교만을 부리면 하늘과 땅이나 사람이 그를 도와줄 방법이 없다지만, 사람이 겸손하면 하늘과 땅이나 사람이 도와준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사람의 도리요 순리라 하겠다. 근래 들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rumor(뜬소문)에 누가. 누구 가 어떠니 저떠니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우리가 그동안 我田引水격으로 小兒病的인 행태로 살아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라 하겠으며 참으로 한심스러운 작태가 아닐 수가 없다 하겠다. 대개의 사람은 自己 자신을 한 번도 성찰(省察)하며 뒤돌아보지도 않은 것은 오직 자신이 제일이라는 자만과 오욕의 발로인 결과이다, 즉 스스로의 자질을 함양(涵養)하지도 않고, 또 남들로부터 나만은 진정한 믿음을 받고 있다는 과대망상적(誇大妄想的)인 생각에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왜? 그들은 자기가 어디에 서있는지 어떤‘깜냥’인지 모르는가, 아니 자신이 과욕. 탐욕이라는 오수를 마시면서 스스로 얼굴에 철가면을 쓰게 되고 철심장이 되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몰염치한 사람으로 변하는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그릇 크기를 스스로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의‘깜냥’을 아는 사람은 자기 생활과 사회발전에 최소한의 기여를 하지만, 자신의 깜냥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과 사회에 저해하는 모양새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人生事에는 모두가 부질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깜냥도 안대고 정체성도 없으며, 바람 부는 데로 물결치는 데로 살아가는 인생이라 말인가, 아니 지금은 살기가 좋은 세상이라 깜냥이 안 되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인가.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일을 벌려놓고 책임감 없이 마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는 物質이 精神을 밝고 지나가는 사람살이 세상살이가 되다보니 그런지 근래 어느 동창이 하는 행태가 그래하였듯이 우리 주위에서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고 새겨두어야 할 말이 바로‘결자해지(結者解之)’란 사자성어이다. 이 말은 내가 다 벌려놓고 일이 힘들 것 같다고 책임감 없게 일을 관둬버리거나,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할 때에 쓰는 말이다. ‘結者解之’의 뜻을 풀이 하면‘맺은 사람이 풀고, 일을 시작한 자가 마땅히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말로써, 자기가 꼰 새끼로 자신을 묶어, 결국 자기 유혹 꾐에 자기가 빠지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의 신세가 되지 말라고 경계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어떤 일을 벌려 놓고 보니 막상 일이 힘들거나 혹은 그 일을 다 마치더라도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을 예견하고 하는 도중에 그만두는 책임감 없거나 전가하는 사람을 비유하고 비판하고자 할 때에 쓰는 말이다. 우리 사람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조그마한 허물을 말하기나 밝히기는 어려워도 다른 사람의 허물은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가면서도 말하기가 참으로 쉽기에, 돌아서서나 뒤에서나 술 안주꺼리로 삼아 남의 말을 하는 게 우리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로 다반사 일어나는 게 오늘날‘소갈머리가 없는’‘싸가지가 없는’‘거지 근성을 가진’행태의 사람이 사는 사회가 아닌가 한다. 그간 지인(知人)으로 오만과 노욕(老慾)의 모(某)야는 죽을 때까지 버릇이 된 망언과 행태로, 또 다시 이웃이나 가까웠던 이들을 이간시키고 정서를 해치고 부정적인 면을 보여 사회가 혼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칠순을 넘은 사람으로 마지막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생각하기에 설익고 어리석은 삶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허황한 꿈과 욕심을 쫒다가 인생을 마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고 하겠다. 삶이란 인생길에서 못났는데도 잘난 듯, 없는데도 있는 듯, 악하면서 착한 듯, 고상하지 못하며 고상한 듯, 진솔(眞率)하지도 않으면서도 진솔한 듯, 없으면 없는 데로 있는 사실 그대로 보여주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즉 사람이 자기의 의지를 버리고 남들처럼 따라 사는‘짝퉁인생’을 산다면 참된 삶이 아니기에, 자기만의 인생길을 가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게 그래도 참 인생을 살아다 하지 않겠는가 한다. 사람에게 인생이란 자기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스스로의 길을 가는 인생을 살았을 때에 참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며, 또한 참된 삶의 길이며 참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즉 사람이 살면서 불나비가 불꽃만 찾아다니다 불에 타 죽듯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물질적 욕망과 외형적인 모습만 쫓는 삶을 살아 왔다고 할 수도 있고, 이러한 삶은 진솔한 내면보다 헛된 외모만 더 중요시 하며 살아온 삶이니 결국 불나비처럼 진실보다는 허상만 보고 살아 왔다고 하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佛家에서는‘한 목숨이 태어남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과 같고, 한 목숨이 죽어 감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 말하였듯이, 뜬구름이란 그 자체는 본래부터 없는 것이듯 인생의 오고 감도 그와 같은 것이기에 우리는 인생을 여여(如如)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