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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安철수, 저질 政治병자로 타락하였는가(3).

碧 珍(日德 靑竹) 2014. 3. 4. 01:28

安철수, 저질 政治병자로 타락하였는가(3).

 

              - 安철수式 새政治의 大義名分은 퇴색하며 역풍을 맞는다 - 

 

 

(1).

오는 3월말 창당을 추진하던 安철수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 중앙운영위원장이 지난 2일 民主黨과의제3지대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3여년동안새政治표방하다가 헌신짝처럼 버리고 국민지지율 하락과 독자 정당추진 과정서 영입 난항 등으로, 자신의 정치 궤도에서 돌연 이탈하여 야합 신당 창당으로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문제는 安철수는 그간 독자 세력화를 강조하며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여왔고, 더딘 영입작업 등은 오래 가는 정당을 위한 주춧돌 쌓기 작업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하고, 특히 民主黨과는‘政治工學的 연대’를 하지 않겠다고 못 박으면서 어떤 형태로든 독자의 길(my way)을 가며 정치적으로 일가를 이루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는데, 安철수는 私益과 黨利黨略으로 국민들에게 한 약속인새政治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私益과 黨利黨略으로 국민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民主黨이란 기성정당과 야합 합병하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인간이 되었다.

 

安철수 의원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정치쇄신에 가장 중요한 공약이었고 또 기득권을 내려놓는 가장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었던 부분이라며, 이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 결단이 통합창당을 결심하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였다고 民主黨과의 창당 합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으나 진실된 모습은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民主黨과 정치적 합병을 하겠다는 安철수의 결정은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도출된 합의(consensus)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 향후 통합작업을 밟아 나아가는 과정에서 내부 진통을 예견되고 있다.

 

즉 安철수 의원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표면적으론 民主黨의 개혁 의지가 핵심 결정 요인일 수 있으나, 사실은 安철수 의원 측은 지방선거 대비와 창당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특히 인재 영입에 난항을 겪고 있었고, 독자적으로 창당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마주한 여러 한계점도 한 몫 하였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民主黨과 정면 대결을 펼쳐야 하는 湖南지역에서 최근 신당 지지율이 주춤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것도 安철수 의원 측으로선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으며, 지방선거가 가까울수록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것도 예견된 수순이었는데, 이런 내부 고민이 야합이란 비난 에서도 民主黨과 지방선거 전 신당 창단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일거에 해소된 모양새가 되었다.

 

문제는 安철수 의 이런 결정은선거만을 위한 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거나-100년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라고 하던 자신의새政治실현이란 신념을 뒤집은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낡은 구태의연한 정치세력이라거나 타파 대상으로 몰아세웠던 民主黨과 결과적으로 손을 잡은 모양새라 지지자들의 반발이 크게 예견이 되고 있다. 그래서 벌써부터차기 대권쟁취를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우호적인 여론 보다는, 民主黨 품에 안겼다는 백기투항이란 말이 좀 더 많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오는 6.4 지방선거를 90여일 앞두고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지난 2일제3지대 신당창당을 선언함에 따라 양측은 숨 가쁘게 통합 수순을 밟아나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고리로 시작된 양측의 관계가 정책연대와 선거연대를 넘어 신당 창당을 통한 통합이라는 최고 수준으로 도약한 모양새이다.

 

(2).

문제는 신당 창당에 있어 아직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인 새정치연합과 달리 民主黨은 전당대회를 열어 정당 해산과 제3지대 신당 합류를 결의하여야 하고, 이후 제3신당 중앙당 창당대회를 거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신고하면 야권 통합 작업이 완료되는 것이다.

 

지난 2007년에도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탈당파, 시민사회가 참여하여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하면서, 제3지대에서 신당 창당을 추진한 뒤 이에 합류하는 형식의 통합 방식을 채택한 바 있다. 문제의제3지대 신당통합방식은 새정치연합이 아직 창당준비위원회 단계에 머물러 있기에黨 대 黨의 합당이 불가능하기에, 양쪽이 공동 참여하는 창당준비단이제3지대에 별도의 新黨을 먼저 발족한 뒤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류하는 밑그림을 그린 것은, 民主黨으로의 흡수통합을 우려하여온 安철수 위원장을 배려한 해법으로 분석되는데, 이 경우는 새정치연합의 자체 창당 작업은 사실상 중단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2일 民主黨과 安철수 의원 측 새정치연합이 '깜짝' 통합-창당 선언을 발표한 것은 30년 가까이 간단없이 이어져온離合集散의 野黨史를 재연한 것으로, 현 야권 세력의 분열과 통합의 역사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제의 安철수란, 지난 대선 때 民主黨 文재인과 야합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대선 출마포기 한다는 한마디 하고 후보 등록 3일전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낫던 자로, 이때부터 安철수는 다른 목적 하에 자기 이름 알리기 위해 政治쇼를 하고 있는 정치 사기꾼 安철수는, 이런 政治Show를 벌려 그가 운영하는 安철수 연구소(안렙)의 주가 상승을 일으켜 주가가 오르자 安철수는 하루 아침에 보유주식을 모두팔고 1.500 억원 가까운 일확천금을 큰돈을 번 인간이 그의 참 모습이 아닌가 한다.

 

생각하기에 무소속 安철수는새 政治新黨 실험이 지난 1월 21일 제주에서 창당 선언을 한 지 꼭 40일 만에 지지율 정체의 벽에 갇혀버린 安철수 바람의 돌파구가 필요하였기에 막을 내리면서, 그는새 政治를 표방하던 新黨 창당을 접고 구태 정치적 세력인 民主黨과 손을 잡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구태 정친인으로 전락하는 추한 모습과 사기꾼적인 행태의 면모를 국민들에게 보여 주는 신파극을 연출하였다, 즉‘現實과 理想 사이’에 놓인 괴리의 줄타가 정치적 도박을 걸면서부터 원래 원칙도 내용도 없었던‘安철수式 새 政治’의 大義名分은 퇴색하면서, 국민의 신뢰도 사라지고 정치인으로 생명인 믿음도 함께 떠나므로 國民으로부터 모진 역풍을 맞게 되기에 현실 정치의 벽을 절감하게 되었다.

 

또한 문제는 아직까지 民主黨의 주류는 親盧세력이기에 金한길 대표가 통합신당 창당의 운을 뗄 수 있었지만,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金한기 대표와 安철수 의원 간 지분 다툼은 불가피하겠고, 이 과정을 親盧가 가만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며 金한길 리더십은 다시 시험대에 올라 가겠으며 더불어 계파 갈등의 골이 봉합되기보다는 더 깊어질 것이라고 예견할 수가 있다.

 

 

* 追記.

참고로 현 야권 세력의 분열과 통합의 역사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30년 가까이 간단없이 이어져온離合集散의 野黨史를 적어 본다.

 

즉 金영삼과 金대중을 중심으로 탄생한 당시 統一民主당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놓고 내부 갈등을 벌인 끝에 金대중을 중심으로 한동교계인사들의 탈당으로 설립 1년도 안되어 분당 사태를 겪으면서, 金대중 등 탈당 인사들이 1987년 11월 창당한 平和民主당은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시련기를 거친 후 재야운동가를 영입하면서 1991년 4월 新民主聯合黨으로 당명을 변경하였고,

같은 해 9월 3당 합당에 반대하였던 통일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된 일명꼬마 민주당과 합당해 民主黨으로 재탄생하였었고,

 

다시 야권 세력지도가 바뀐 것은 14대 대선에서 패한 뒤 정계 은퇴한 金대중이 1995년 7월 복귀와 동시에 새政治國民會議를 창당하면서부터인데, 새정치국민회의는 金대중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직후인 2000년 1월 새千年民主黨으로 확대 개편되었고,

 

이후 새천년민주당과 개혁국민정당, 한나라당 내 개혁성향 세력이 헤쳐모여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였는데,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도가 바닥권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이에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탈당파 80명, 민주당 탈당파로 구성된 중도통합민주당,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주축으로 한 한나라당 탈당세력, 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여 중도 개혁세력을 표방하여大統合民主新黨을 만들었지만 결국 대선에서 참패하였고,

 

2008년 2월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출범한 統合民主당이 같은 해 7월 民主黨으로 개명하였고, 지난 2011년 12월 시민통합당과 합당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으나,제3지대 신당창당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출처 : 벽진산방
글쓴이 : 碧珍(日德. 靑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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