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中 날 외할머님이 그리웁다.
지난 2월 하순을 들면서 중국 무한 발 Corona virus 감염증 확산으로 前古未聞 어려움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코로나19가 보여주는 위협적인 위력 때문에 거리두기, 외출 등등 일상생활 중 일부를 자제하며 일상생활을 하게되다보니 가고 싶은 곳도 못가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가 없는 등 어려운 삶을 반년여 이상이 지속되다보니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하기가 그지없다. 따라 국민들은 지역 간 별리(別離)에 준하는 잠시나마 생이별(生離別)이란 사태를 맞아 삶이 어려워지고 만나거나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기막힌 이별을 너 나 모두가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여파로 이제 별수 없이 방콕-족이 되어 표현 할 수가 없을 만큼 답답하고 숨 막히는 나날을 기약도 없이 무력한 생활을 하고 있는 신세가 되고 보니, 문득 문득 고향산천, 생가, 불알동무, 죽마고우와 음력 8월 5일이 생신(生辰)이신 외할머님의 인자한 모습과 추억들이 눈에 아른거리니 그리운 마음 그지없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벌써 9월 2일 오늘은 음력 7월 보름으로 백중(百中)이자 佛敎에서는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 지나온 그날들이 panorama처럼 펼쳐진다.
지난 8월 15일(음력 6.26일) 말복에 이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지고, 풀도 울며 돌아간다.’ 는 절기인 처서(處署)가 되어도 더위가 기세를 숙어지지 않고 맹위를 떨칠 것 같으나 처서가 지나면 그 세가 한풀 꺾이는 듯 아침저녁으로는 다소 시원한 바람을 피부로 느낀다. 그가 사는 大邱의 기후는 좀 특이하다, 봄이자 여름이고 여름이자 가을이고 가을이자 어느 듯 겨울이라, 계절간의 그 차이를 느낄 수가 없는 특이 지역이며 일교차가 매우 심한 지역이라, 5월 중순부터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여 외출할 때에 잘못 판단을 하면 땀투성이가 되거나 감기에 들 수가 일수이라 그가 베트남에 머물었던 시절보다 더 무더운 大邱 기후가 아닌가 한다.
올 양력 9월이 들면 2일(음력 7.15일)은 百中이자 우란분절(盂蘭盆節)이며, 7일(음력 7.20일)은 백로(白露), 22일(음력 8.6일)은 일 년 중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가을날 추분(秋分)이다.
음력 7월 보름을 ‘百中’ 이라고 하는 연유는 1년 24절기 중에 가장 가운데 해당하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음력으로 따지면 1년 가운데 중간 반환점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 조상들은 百中日(날)을 명절로 여겼으며, 지난 우리 조상들은 百中이 되면 여러 행사를 있어왔었다. 우선 각 가정에서 익은 과일이나 농산물을 따서 조상의 사당에 먼저 올리는 천신(薦新)을 한 다음에 먹는 천신 차례를 지냈으며, 옛날에는 종묘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하는 일도 있었다. 농가에서는 백중날이 되면 머슴을 하루 쉬게 하고 새 옷을 지어주고 돈도 준다. 그러면 머슴들은 그 돈으로 장으로 가서 술도 마시고 음식을 사먹고 물건도 사기에 ‘백중장(百中場)’ 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百中은 일꾼 등 노동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명절이라 외할머님께서는 백중날에는 머슴들에게 소고기 국밥에다, 머슴 등급에 따라 상머슴은 고품질의 삼베옷, 꼴머슴은 일반 삼베옷 한 벌과 용돈을 주시었던 어릴 때 기억난다, 그러면 머슴들은 그 돈으로 백중장(百中場)에 가서 술도 마시고 음식을 사먹고 물건도 사기도 한다. 그러기에 비유한다면 오늘날의 勞動節이 바로 조선시대에는 百中節이었던 것이다.
특히 백중장은 장꾼들이 많고 구매가 많은 장이며, 취흥에 젖은 농군들은 농악을 치면서 하루를 즐기기도 하고, 때로는 씨름판이 벌어지며 장터에는 곡마단 등 흥행단체가 들어와서 활기를 띠기도 하는데 이러한 백중 명절은 중부 이남지방이 성대하다. 또한 이날은 그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위로하며 논다. 이것은 바쁜 농사를 끝내고 하는 농군의 잔치로서 이것을 ‘호미씻이’ ‘세서연(洗鋤宴)’ ‘장원례’ 라고도 한다. 또한 慶北지역에서는 이를 가리켜 ‘풋굿’ ‘풋구’ 라 하고, 湖南지역에서는 ‘질꼬내기’ 라 하며 마을의 地主 집에서 음식과 술을 대접하며 한해 농사의 수고를 위무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간 장마가 그치는가 싶더니 이어 다가온 태풍 비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 해질 무렵 먼 산 넘어 붉게 물드는 석양과 산 정상 운해(雲海)를 바라보고 있으면 생각 속에 있는 근심 걱정이 어느새 말끔히 사라지는 듯하다. 이따금 지난날을 회상하다보면 잊히지 않은 살아있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십육여 년 전 가야산 신계리 만귀정(晩歸亭)에서 머물던 그때가 그립기만하다.
그때도 오늘처럼 여름비가 오라가락 하는 날 기억으로 서녘 산에 해가 넘어가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이면 부끄러움을 타기에 밤에만 피는 달맞이꽃(月見草) 봉오리들이 펴지는 소리와 함께 꽃향기가 주위를 넘쳐 스며들 때쯤이며, 반딧불은 부끄러움도 없이 짝을 찾기 위하여 불을 켜고 이저리 날아다니던 그 시절 그 때가 아련히 가슴으로 와 앉는다.
사람의 인연(因緣)이나 삶이란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가는 길이 있어 가게 됨을 절실히 느끼게 하고 무언가 남기고 가는 것 보다, 뒤가 아름답게 잘 마무리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는 준비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이 새벽에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아름답고 고맙다는 마음이다.
자연현상으로 아침저녁으로 노을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황혼이 있다, 사람에게 인생의 황혼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사람의 일생은 준마(駿馬)가 문틈을 스쳐지나가는 것만큼은 짧고, 사람의 일생동안 겪고 누리는 부귀영화나 신산고초(辛酸苦楚)는 모두가 한 순간의 일이요 부질없는 집착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이런 때 ‘버들 솜 흩날리고 뉘엿뉘엿 해가 지는데 / 문 앞 버드나무 심은 이는 그 뉘 이신가 / 산중의 부귀를 차지하는 사람 없어 / 나무하는 아이들이 저마다 한 짐씩 꽃을 지고 돌아오네.’ 라고 李朝 때 현일(玄鎰)의 ‘山居’ 를 읊으니, 佛家에서 승려들이 빈손으로 등에 바랑하나 짊어지고 구름과 물처럼 세상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운수행각(雲水行脚)이 떠오르는 것은 어인 일일까 한다.
아무튼 그는 인생 황혼 길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인생 황혼 무렵에 그래도 외롭게 늙어 가는 그의 곁에 머무르며 이해하여주고 벗이자 반려가 되어주는 그 사람이 있기에, 오늘 그가 살아 갈 수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자 복이 아닐 수가 없다.
* 追信. 백중(百中). 우란분절(盂蘭盆節)에 대하여.
우리의 세시풍속으로 음력 7월 보름날을 두고 백중(百中)이라 하는데, 이를 백종(百種), 중원(中元), 망혼일(亡魂日), 우란분절(盂蘭盆節) 등으로도 불린다. ‘百種’ 은 이 무렵에 과실과 소채(蔬菜)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백가지 곡식의 씨앗(種子)을 갖추어 놓았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고, 7월 15일 ‘中元’ 은 1월 15일을 '上元', 10월 15일을 下元과 함께 三元이라 하여 초제(醮祭)를 지내는 세시풍속이 있었으며, ‘망혼일(亡魂日)’ 이라 하는 까닭은 이날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 음식. 과일을 차려놓고 천신(薦新)을 하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盂蘭盆節’ 은 불교에서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지내는 날을 중국에서 명절화한 것이라고 하며, 佛家에서는 불제자 목련(目蓮)이 그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7월 보름날일에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공양했다는 고사에 따라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 공양을 하는 풍속이 있다.
佛敎에서는 음력 7월 보름이 우란분절(盂蘭盆節)이자 百中節이 되면 승려들이 재(齊)를 올리고 부처님을 공양하는 날로 큰 명절을 삼았는데, 불교가 융성하였던 신라나 고려 때에는 이날 일반인까지 참석하여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사찰에서만 행하여졌으나 근래 민간에서는 여러 과실과 음식을 마련하여 먹고 하루를 쉬는 날로 보내고 있다.
우란분절(백중)은 불교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초파일), 출가절, 성도절, 열반절과 함께 불교의 5대 명절로 꼽히고 있을 만큼 중요한 날이다. 이 날이 불교의 큰 명절로 자리 잡은 것은 부처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목련존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아귀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스님들의 하안거夏安居)가 끝나는 음력 7월 보름날 같이 하안거에 들었던 승려들이 자신이 지은 죄를 다른 승려들 앞에서 고백하고 참회하는 夏安居를 마칠 때 하는 행사날인 자자일(自姿日)에 여러 스님들에게 공양했다는 ‘우란분경(盂蘭盆經)’ 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음력 7월 15일 우란분절에 하는 우란분재(盂蘭盆齋)는 여름 안거(夏安居)를 끝내고 안거에 들었던 승려들이 자신이 지은 죄를 다른 승려들 앞에서 고백하고 참회 의식인 자자(自咨)를 하는 날이자, 지옥에 떨어진 조상의 영혼을 구하여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에 보내기위한 재인 천도제(遷度祭)이기에 우란분재(盂蘭盆齋)라고도 부른다, ‘盂蘭盆齋’ 에서 우란(盂蘭)은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뜻이며 분(盆)은 구제한다는 뜻이며 재(齋)는 공양을 베푼다는 뜻이다.
더불어 목련경(目連經)과 우란분경(盂蘭盆經)에 보면, 부처는 지금 살아 있는 부모나 7대의 죽은 부모를 위하여 자자(自咨)를 끝내고 청정해진 스님들에게 밥 등의 오미(五味)의 음식과 오과(五果)와 향촉(香燭)과 衣服으로 공양하라고 하였는데, 이는 신통력으로 자기 어머니가 아귀(餓鬼)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본 목건련(目犍連)이 어머니의 구원을 부처에게 청원하여 비롯된 것으로, 이후 佛家에서는 자자를 끝내는 날에 우란분재를 올리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 나온 참에 ‘백로(白露)’ 에 대하여 적어본다, 9월이 들어 2일인 음력 7월 보름날 百中(우란분절) 닷새 후인 음력 7월 20일은 白露란 어떤 날인가, ‘白露’ 는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절기 가운데 열다섯 번째 절기로 處暑와 秋分 사이에 들며 음력 7월로 양력 9월 7~9일경으로, 이때쯤이 되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엉켜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완전히 나타나는 때이다.
옛 중국 사람들은 백로입기일(白露入氣日)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그 특징을 말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제비가 강남으로 돌아가며 말후(末候)에는 뭇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이 때가 되면 우리나라에는 장마도 걷히고 중후와 말후에는 쾌청한 날씨가 계속된다.
白露가 음력 7월 중에 드는 수도 있는데 濟州道와 全羅南道지방에서는 그러한 해에는 오이가 잘 된다고 하며, 또한 제주도 지방에서는 백로에 날씨가 잔잔하지 않으면 오이가 다 썩는다고 믿는다고 하며, 慶尙南道의 도서지방에서는 ‘백로에 비가 오면 十里 千石을 늘인다’ 고 하면서 백로에 비가 오는 것을 풍년의 징조로 생각한다. 또 백로 무렵이면 고된 여름 농사를 다 짓고 추수까지 잠시 일손을 쉬는 때이므로 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어버이를 뵙거나, 승려가 속가의 어버이를 뵙는 근친(覲親)을 가기도 하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