祭塚謠(제총요)가 생각나다.
흰둥 개가 앞서가고 누렁이가 따라가는 들밭 풀 가에는 무덤들이 늘어섰네, 제사 마친 할아버지는 밭두둑 길에서 저물녁에 손주의 부축 받고 취해서 들어온다.
/ 白犬前行黃犬隨 (백견전행황견수) / 野田草際塚纍纍, (야전초제총루루) / 老翁祭罷田間道 (노옹제파전간도) / 日暮醉歸扶小兒. (일모취귀부소아)
이 詩는 조선 중기의 손곡(蓀谷) 이 달(李達)이라는 시인의 작으로, 이 시의 제목이‘무덤에 제사 지내는 노래(祭塚謠. 제총요)’이며, 李達은 당시 백광운, 최경창과 더불어 삼당시인으로 불렀으며, 그림 같은 아름다운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이제 봄의 문턱을 넘어 섰기에 따사한 바람도 맞을 겸 어슬렁 걸어가다가 아해(兒孩)들이 노는 놀이터 그네에 앉아 아해들이 노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아해들이 노는 것이 꼭 우리 사회의 행태의 한 단면을 보는 거와 다름없다.
우리 속담에“아해들은 까불면 눈에 눈물 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어제 되어 먹지도 안한 글을 보고 순간 느낌 그대로다.
요즈음 들어 주위에 자기 깜냥을 모르는 철없는 아해처럼 시야에 있는 그들이, 졸부 졸녀의 헤픈 웃음과 공치사에 왕자.공주병 환자가 마치 몽상과 환상에서 불을 쫓는 불나방의 삿되고 헛된 꿈을 쫓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면 측은 하고 불쌍한 느낌이 든다.
프랑스의 정치 사회학자로 전후 J.P.사르트르 등과 함께 한 사회주의 학자 레이몽 아롱(Raymond Aron)은 그의 저서 ‘지식인들의 아편(L’Opium des intellectuels)’에서 ‘종교는 아편이다’이라고 책 서두에서 써 놓고 있는데, 학창 시절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며 옳은 말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에 종교가 가지는 그 본성을 진솔하게 이해하고 인간의 이성을 잃지 않는 정도에서 종교를 이해하고 믿는 것이지, 믿음을 그 도를 넘기면 종교가 아니라 맹신이며 맹신은 자기를 파멸하게 하고 주위와 사회에 지대한 나쁜 영향을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여 오염을 시키는데 모 교도들의 맹신으로 작금 불교계가 피해를 보았고 집단 투쟁을 하지 않았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종교문제 뿐만 아니라 사람도 자기 깜냥의 그 한계를 넘으면 맹신자처럼 아해들처럼 눈에 눈물이 나게 되는 게 우리 人生사 아닌가 한다.
그래서 말은 해야 할 때에는 말은 해야 하고 입을 다물어야 할 때는 입을 다무는 것도 지혜로운 태도이며, 또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것은 비겁하고 용열한 태도이다.
그리고 거짓과 위선은 잠시나마 통하나 찰나에 허물을 벗게 되며, 손으로 하늘을 가리기와 무엇이 다르며 이런 일을 한 점의 부끄럼 없이 자행한다면 고양이와 개와 무엇이 다른가, 그러기에 인간의 아집과 욕심은 인간을 어떤 길로 인도 하는가. 碧 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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