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마음으로 大見寺 다녀오며. 
봄인가 싶더니만 벌써 초여름 무더우나 맑은 날이라 촌음이 흘러 하루하루가 아쉽기만 하는 삶 가운데, 신라 헌덕왕(810년) 때 창건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강제 폐사되었다가 지난 2014년 3월 1일에 복원된 대구 달성군 비슬산(琵瑟山) 정상 아래에 제비집처럼 터를 잡고 있는 대견사(大見寺)를 아끼는 사람과 더불어 찾았다. 大見寺는 1917년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사람들에 의하여 절을 폐사시킨 이후 이제까지 대견사지(大見寺址)란 이름으로 그 터만 남아 있었는데, 사찰의 그 흔적을 모두 잃었지만 그 와중에 흩어진 돌 조각을 맞춰 놓은 것이 지금의 삼층석탑으로, 그 고고한 자태는 여느 절에서 느끼는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데 아마도 벼랑 끝머리에 세워진 탑의 형식으로 볼 때 비보사상(裨補思想)으로서 나라의 흥(興)을 바라는 간절함이 배여져 있다고 하겠다. 해발 1,000m 에 위치한 大見寺를 가고자 산길입구에 도착하니 일반차량은 출입제한이라 무료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전기자동차 '반딧불이' 타는 곳으로 가 승차하여,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은 암괴류를 뒤로하고 고불고불한 심한 고개를 만나 30여분 울퉁불퉁한 암석들이 보이는 임도 겸 산길 따라 오르내리니, 전기자동차도 힘이 좀 부친 듯 헉헉 거리며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지고 마침내 도착하여 하차하여 대견사로 걸어서 들어가니 부처바위 코끼리바위 등이 마중을 나온 듯하다. 
大見寺는 산사의 절집치고 빼어난 조망이 자랑거리가 아닌 곳이 없다지만 대견사 터의 조망은 멀리 서쪽으로 낙동강이 햇살에 반사되어 비치고 거칠 것 없는 넓은 현풍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대견사 터 주변에는 스님바위, 형제바위, 코끼리 바위 등이 갖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이 널려 있고, 벼랑 끝에 세워둔 삼층석탑은 보는 것만으로 아찔하고 혹시나 넘어질까 가슴을 조이게 하는 남달리 수준급이다, 大見寺 주위 경관은 봄에는 비슬산을 붉게 물들이고 가을에는 억새가 장관인 30여 만평의 참꽃군락지는 지금은 온통 초록물감을 풀어 놓은 듯 초록바다를 연상케 하고,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며 파도치는 참꽃구경은 못하지만 산사의 호젓함을 즐기기에는 오히려 지금이 적기인 듯하며 언듯 산바람이 한줄기 지나가니 가슴 속까지 시원하다. 大見寺 주차장까지 거리는 5.8km이고 전기자동차의 속도는 시속 12km/h정도라 시간이 30여 분 걸렸으며, 출발점이 해발 450m이고 산꼭대기 천왕봉이 1,100m가까이 된다고 한다. 1,000m를 올라가는 전기자동차로는 국내최초로 달성군에너 매입해서 달성군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비슬산(琵瑟山.1083.56m)은 대구의 분지를 형성하는 대구 남쪽의 산으로, 비슬산이란 이름은 산 정상에 있는 바위가 신선이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또한 당나라 문종이 절을 지을 곳을 찾다가 얼굴을 씻으려고 떠놓은 대야의 물에 비친 이 터를 봤다고 하여서 대견사로 불리기 시작하였다고도 한다. '비슬' 이란 말이 인도 범어의 발음 그대로를 표기한 것이라고도 한다, 비슬산자락에는 불교문화재가 산재해 있는데 고찰 유가사와 소재사 그리고 산 정상부위에 대견사가 있으며, 大見寺경내 끝자락에 버림받은 듯 홀로서 영겁의 세월을 보아온 석불이나 석탑을 보노라면 지난 온 세월의 숨결이 아리게 하게 느껴온다. 대견사(大見寺)는 신라 헌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대견사는 일연 스님이 22세이던 고려 고종 4년 1227년 승과 선불장에 장원 급제 후 초임 주지로 22년간 주석하면서, 참선에 몰두하며 삼국유사 자료수집 및 집필을 구상한 사찰로 유명한데 임진왜란을 전후해 폐사되었다가 광해조에 중창되었고, 다시 1900년에 중창을 하였다가 대견사는 일본의 기를 꺾고 대마도를 끌어당긴다는 속설에 의거 191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되었던 설이 있다. 1900년 영친왕 즉위와 대한제국 축원을 위해 중수되어 동화사 말사로 편제되었지만 191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이후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가, 2013년 말에 대견사 중창사업을 마무리하고 2014년 3월 1일 달성군 개청 100년에 맞춰 개산식을 열었다. 비슬산 大見寺의 중심이 대견보궁으로 그 안에는 진신사리가 모셔져있다니 적멸보궁인 셈이니 그 안에는 진신사리가 모셔져있다니 적멸보궁에 속한다고 하겠으며,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通度寺)의 적멸보궁과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중대(中臺) 上院寺의 적멸보궁 및 인제의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의 적멸보궁,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의 적멸보궁, 강원도 정선의 태백산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에다가, 건봉사, 도리사, 용연사 등 8대 적멸보궁과 더불어 대견사도 적멸보궁이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8말 4되나 나왔고 그중 백 여과 이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고 하는데 여기도 한과가 모셔져 있다. 인생이란 흐르는 강물처럼 멈추어 지지 않는 길 다면 긴 세월 속에 白首風塵(백수풍진) 世上을 벌써 외길 7十年 지나 보내고 나니,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버리고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기 전에 부질없는 욕심보다는 작은 단하나의 소망으로서 흐르는 강물처럼 영원한 사랑이란 참 마음을 만들어 고이 간직하는 꿈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우리 언제쯤이면 함께 살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을 버리자 하고 마음을 다잡으나 또 다시 살아나고 살아 나 참으로 어렵다. 삶이, 사랑하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이었던가. 어려운 것인가. 세상 인간사 쉬운 삶이라 하기보다 어렵고 세월에 끌려 살아 왔다는 회한이 휴복(休福)보다도 가득한가 보니 하잘 것 없는 한 사람이었나 보다. 
오늘 하루 참으로 행복하였다, 그 사람과 더불어 반딧불이 전기자동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 따라 정상을 오르며 시원스런 경관에 시원한 바람에 많은 사랑을 나누며 가졌다, 스치는 바람결에 문득 내가 머물러 있는 지금의 이 세월이 어떻게 흘러 왔는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지난 한 삶에 있었던 시간들이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알게 되면서, 지난 시절들이 오래토록 곁에 있어주어 주리라 생각하였던 그 젊음이 어느덧 내 곁을 떠나갔다는 것을 古稀를 지난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무턴 그는 인생 황혼 길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인생여정 황혼 무렵에 그래도 외롭게 늙어 가는 그의 곁에 머무르며 이해하여주고 벗이자 伴侶가 되어주는 그 사람이 있기에, 오늘 그가 살아 갈 수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자 복이 아닐 수가 없기에 늘‘고마움’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게 지금의 자화상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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