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錯覺)은 자유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다.

우리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자기보존을 위하여 스스로 노력하며 행하여 생산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남에 빌붙어 얻거나 해를 끼치며 더부살이로 살아가려는, 즉 기생(寄生)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생각하기보다는 우리 주위나 사회에 참으로 많게 보인다.
우리 사람은 누구나 시기(猜忌)하거나. 탐(貪)내거나. 욕심(慾心)을 내거나 오만(傲慢)하는 등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남을 배려하지 않고 오르지 자기만족만 생각하는 이기적 욕심과 집착으로 오는 번뇌(煩惱)는 마음의 병의 근원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지배하게 되므로 인하여 남은 알고 있으나 자신은 모른다는 것인데, 이것이 마음의 병으로‘거지 근성’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 父母님의 크나 큰 恩德을 입어 태어나 시간과 삶에 대하여 이런 저런 생각으로 살다보니, 중국의 도연명 그의 歸園田居에서‘티끌세상에 잘못 떨어져 후쩍 三十年을 허송 하였네’라고 읊었는데, 생각하여보니 늘그막에 세상의 어지러움과 온갖 곤란을 겪게 되는 白首風塵(백수풍진)世上을 벌서 외길 七十年을 지나 보내고 나니, 世上事 人間事 쉬운 삶이라 하기보다, 어렵고 세월에 끌려 살아 왔다는 회한(悔恨)이 휴복(休福)보다도 가득한가 보니 하잘 것 없는 한 사람이었나 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체험하고 배운 것 등을 모두 다를 기억하고 살아 갈 수가 없는 게 우리 사람이다, 젊은 시절인 청년기는 늙은 노년기에 비하여 다소 기억력이 좋으며 혹여 사람에 따라 기억력이 좋은 사람과 다소 떨어지는 사람으로 구별할 수가 있으나, 보통 사람이면 대동소이(大同小異)하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게 사람의 기억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착각(錯覺 illusion)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잘못 느끼거나 지각(知覺)함을 말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흔히 ‘생각을 바꾸면 답이 보인다’ 는 말을 흔히 듣는다, 우리가 알면 쉽고 모르면 어려운 난제 아닌 난제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데, 난제 아닌 난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때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논리 계산 능력을 버릴 필요가 있는데, 즉 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 경험 논리 계산 능력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판단의 오류와 장애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한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자신이 매사에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 고 말하거나 억측에 가까운 예측을 제시하거나, 혹은 자신의 경험과 논리를 주장하거나 습관적으로 문제 대응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면, 우리 자신의 심리상태를 알아가는 것도 좋은 일이며 삶의 보람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라 하겠다. 즉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솔직히 인정할건 인정하고 잘못 된 것은 고쳐 나가는 가운데 우리가 보다 좋은 관계와 행동과 판단에 이를 수 있음을 스스로가 배울 수가 있다.
또한 우리 사람은 점점 더 쉽고 간편한 길로 나아갈려는 경향이 있다, 즉 그러한 편리성과 관성을 좋아하는 체질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간단하고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사고(思考)의 생각을 우물 속 깊은 곳으로 잠기게 만드는 한 과정이라고 하겠다, (데이비드 맥레이니의 錯覺의 心理學 참조)
우리 사람은, 왜 착각(錯覺)에 빠지는 걸까?, 이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이 녹음기처럼 재생되는 것이라고 믿는데, 실상으로 기억은 살면서 마주치는 새로운 정보는 우리의 기억을 변조하기에 열심이어서 너무도 쉽게 오염되는데도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또한 무의식의 영향도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자아(自我)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견고한 정신적 mechanism(어떤 대상의 작동 원리나 구조)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각자 자기마다 고유한 행태로 한 生을 살아가고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이 들어 한 삶을 생각하여 보면 착각(錯覺) 속에서 살아왔으며 지금도 착각속에서 사는 친구들이 주위에 아직 많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불혹(不惑)이 아니라 고희(古稀)를 맞은 요지음도 자신의 역량, 위치, 처하고 있는 상황이 어떤지를 알지 못하는지 아직도 지나온 시절에 하던 행태를 스스럼없이 하는 모양을 보자면 참으로 역겹기만 하다,
우리 사람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조그마한 허물을 말하기는 어려워도 다른 사람의 허물은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가면서도 말하기가 참으로 쉽기에, 돌아서서나 뒤에서나 술 안주꺼리로 삼아 남의 말을 하는게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생각하기에 사람이 한생을 살아가며 주위를 둘러보면서 벗(友)이란 하고 생각을 할 때가 많은데, 그러기에 인생이란 긴 세월을 살면서 과연 진정한 벗을 몇이나 만나며 사귀고 갈까하고 생각하며 주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데, 흔히들 착각(錯覺)은 자유라고 하지만 우리가 착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며,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