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산문. 편지글.

[스크랩] 秋夕과 省墓.

碧 珍(日德 靑竹) 2010. 10. 30. 08:11

 

 

 

     秋夕과 省墓.

 

 

 

우리의 민간 절기(俗節)에 음력 8월 15일에 성묘(省墓)하는 것을 秋夕이라고 하는데, 3월 상순에 벌초(伐草)하는 것은 중국 당나라 개원례(開元禮)에서 비롯되었지만, 한식(寒食)에 묘소(墓所)에 참배하고 추석에 벌초하는 것은 중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라,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선생이 安正進의 질문에 답하는 글을 보면 추석은 민간 풍습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한때 事大主義가 기승을 부리며 만연할 때인 인조반정 이후 일부 士大夫들 사이에, 중국인 대국에 없다는 이유 때문에 추석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秋夕 省墓는 가야의 수로왕에서 시작된 동방의 풍속(東俗)이라고 보았는데, 三國遺事‘가락국기’에 매년 正月 3일과 7일, 5월 5일, 8월 5일과 18일(추석)에 풍성하고 정결한 햇곡식과 과일로 제사를 지내었는데, 이것이 대대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즉 추석 성묘는 우리 민족의 孝心이 만든 독특한 우리 고유의 풍속인 것이다.

 

성묘가 효심의 발로라 하니 시묘(侍墓)에 대하여 보면, 조선의 유교(儒敎) 풍습 가운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동안 묘소 옆에서 묘막(墓幕.움막)을 짓고 3년을 사는 삼년시묘(三年侍墓)라는 의례(儀禮)기 있다.

 

대체로 性理學이 뿌리를 내리는 조선조 중기부터 三年侍墓는 소수의 선비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조선조 후기로 접어들면서 사회전반 저변으로 확대하였던 것이다.

 

三年侍墓는 일반적으로 묘(墓)옆에다 움막을 지어 놓고 여기서 잠도 자고 밥도 하여 먹으면서 24시간 머무는 형태의 시묘가 있고, 다른 하나는 묘 옆에다 움막을 지어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무르고 밤이 되면 인근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자고 다시 묘소로 돌아오는 형태의 시묘로 대체로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또한 상주(喪主)가 3년동안 바깔 출입을 삼가고 굴건제복(屈巾祭服)이라는 매우 무겁고 불편한 복장을 하고 생활하였는데, 屈巾祭服은 실제로 하여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기에 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자식으로서는 죄가 되기에 참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三年侍墓라면 적은 시간이 아니고 보모 초상(初喪)을 당할 나이라면 그 자식들이 대개는 중년 무렵인 경우가 많으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중년 나이에서는 사회적으로 한창 바쁘게 일할 때이나, 이때 모든 일을 작파(作破)하고 3년간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조선시대 士大夫의 관례이었다.

 

생각하기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정신없이 바쁘다가 갑자기 하던 사회생활을 접고 적막강산인 산속 묘막(움막)집으로 들어가서 생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고 생각하여보자.

 

즉 3년이란 기간은 社會的 自我를 버리고 宇宙的 自我로 들어가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宇宙的 自我에 들어가려면 필히 죽음(死)에 대하여 깊고 넓은 성찰(省察)을 거쳐야 할 것이다, 조선 유학(儒學)은 이 성찰의 시간을 제도적으로 장치를 하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묘(墓)이야기를 하다보면 장지(葬地)인 明堂이란 말이 생각나는데, 明堂이 무엇인가?. 우선 명당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적선가(積善家) 忠臣 孝子와 같이 도덕적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며, 적악가(積惡家)는 명당에 묻혀서도 안 되며 혹여 명당에 묻혀 다고 하여도 후손들이 福을 받는 것이 아니기에 風水에도 지켜야할 윤리(倫理)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조에는 어떤 사람이 묏자리를 부탁하면, 그 사람의 품성이 좋은 사람인가 덕을 베푼 사람인가 배신을 하지 않은 사람인가를 파악하기 위하여, 그 사람의 四柱觀相을 살펴보는 등, 묏자리를 잡아 줄때 아무나 함부로 잡아주지 않고 매우 신중을 기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즉 또한 다른 사람의 마음에 못을 박아서 재물(돈)을 모은 사람인지 보기 위하여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인지 보기도 하고, 그리고 그 사람의 평판을 들어보고 평판이 나쁘면 거절하고, 또 그 사람의 先代가 적선을 하였는지 구두쇠로 살았는지 약자를 갈취하면서 살았는지, 어떤 일을 하였는가도 살펴보기도 하였다.

 

그런 다음에 의뢰인의 先山에 올라가 선산에 있는 묘들의 급을 살펴서 그 격(格)을 보고 정하여 주며, 마지막으로 의뢰인과 함께 2~3년동안 求山하러 전국을 같이 여행을 하여 보면서 묏 터를 잡아 주는데, 이러한 검증을 거친 후 明堂에 묻혀야만 發福을 한다고 한다.

 

반면에 明堂이 후손들의 發福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風水家들은 다섯 가지 五患(오환)이 없는 葬地면 된다고 주장하는데 이유가 있는 말이라 하겠다.

 

즉 四禮便覽(사례편람) 喪禮(상례)조는 五患에 대하여 길-성곽-연못이 되거나 農土가 되거나 권세가에게 빼앗기지 않는 땅이라면 五患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風-水-火-蟲(충)-木의 침해를 받지 않은 땅을 뜻하기에, 明堂을 찾기보다는 五患을 피하면 된다고 하던 선대의 지혜에 감복할 따름이다. 그러기에 墓所는 生자를 위한 發福이 아니라 산 혼령에 대한 孝心이 담긴 곳인 것이라 하겠다.

 

옛날 사람들은 조상의 혼령이 骨肉을 계승한 후손들과 소통한다는 생각에서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여러 조상을 함께 모시는 게 좋다는 생각에, 조상의 분묘를 좋은 곳에 쓰고자 한 것을 孝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였는데, 우리의 국토인 錦繡江山이 온통 묘역으로 덮여 있어 국가 발전과 자연훼손이 갈수록 심각하기에 葬禮文化도 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서 추석이나 설이 되면 부모님 형제들 친구들 이웃들과 더불어 고향생각이 더욱 깊어지기만 하는 것은, 올해 추석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가신 부모님들과 고향 생각 그 넓은 고향집 생각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간절한중에, 포은(圃隱)선생의‘中秋有懷(중추유회)’가 생가난다.

 

今夜中秋去年日 (금야중추거년일)/오늘밤 추석에 작년의 달은 떴지만

去年客子猶未歸,(거년객자유미귀)/작년의 나그네는 아직 돌아가지 못했네,

明年何處逢明月 (명년하처봉명월)/내년은 어디에서 밝은 달 만나려나

獨坐南窓自泳詩.(독좌남창자영시)/홀로 남쪽창가에 앉아 시나 읊고 있구나.

 

 日德 碧珍.

 


                               

                                                                             해탈의 기쁨 외

 

 

 

출처 : 碧珍(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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