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스크랩] 마음으로 般若心經을 이해하려고.

碧 珍(日德 靑竹) 2010. 8. 13. 10:54

    마음으로 般若心經을 이해하려고.

     

                                              전각 반야심경.


    반야심경에 대한 이해를 하고자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해가 지나가고 있다, 나름대로“반야심경”에 대하여 조금씩 알게 되어 정리하고 싶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270자의 짧은 경문 중에서“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色이 空이고 空이色이다. 즉 존재가 비존재이고 비존재가 존재이다.)에 대한 이해, 특히 위 문장 후반“色卽是空 空卽是色에 대한 이해가 된다면 그래도 반야심경을 배워가져다 할 수 있겠다.


    “色卽是空”에서“色은 空이고 空은 色이다.”이 위대한 구절은 지금까지 불교사상을 표현하는 최고의 金言으로 인류에게 회자 되고 있다.


    불교의 中心思想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며 이문장중 전반 色不異空(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의 문장에 내포된 뜻은 좀 더 명확하고 압축적으로 표현 한 것이다.


    눈(色)이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空)이 보는 것이며, 귀(色)가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空)이 듣는 것이다.


    현 세상사에서 모든 사물들은 순간과 연속으로 변화하는 모습들을 관하여 보면, 모든 존재(色)는 그 실체는 없다(空)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모든 사물(色)은 연기(緣起)를 통하여 생성되어 그 자성(自性: 스스로의 독립성)이 없기 때문에 空하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이 보는 외부세계는 자기 마음(망상)의 투사(透寫)이므로 꿈처럼 空한 것이며, 시간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참으로 존재 한다고 말 할 수 없으며 다만 紈術(환술)로만 존재 할뿐 사실상 空한 것이다.


    일체의 미혹한 집착(아집)으로 보는 상(相)을 여의면, 자연스레 진여(眞如)의 묘한 이치(妙理)가 나타나는 것이며 이것을 참된 공(眞空)이라 하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천태계에 있는 모든 별도 마지막에는 불랙홀(black hall)로 사라져 버릴 때가 필히 있는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육신(色)도 죽으면 먼지가 되어 空으로 변화 하는 것도, 우리가 움직일 때 자기 그림자가 항상 따라 다니듯이 우리의 삶(色)은 죽음(空)으로 관통하고 있는 것과 같다.  


    물질(色)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없는 것이며 물질 배후에 영묘한 그 무엇(空)이 숨어 있어서 이 현상 세계를 성립. 정리.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각개체가 처하고 있는 여건. 주위. 환경. 육체적조건등은 세상만사는 만고불변인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이 조작하여 놓은 虛像(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 진실 그 마음(本心)에서 나오는 지혜와 자비의 큰 佛力으로 환경과 육체 등 여건을 넘어서 자유자재의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色卽是空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가 크다.


    “내존재는 내가 아니다, 물질은 있으나 물질은 없다.”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범부(중생)에서 변혁을 얻어 성인으로 오르지 않을까 한다.


    “空卽是色에서 空卽是色을 강조하기 위하여, 色卽是空을 강조하기 위하여 空卽是色은 말한 것은 아니다.”


    조주선사에게 사뢰기를“취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내 놓으라 합니까?” 하고 말씀드리니, 선사께서“그렇다면 그것을 집어 들어라 말씀하실 때, 승려는 즉각 깨달음을 얻었다”,


    이 대화를 보면 그 승려는 어느 정도 가지는 空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알고 있다는 상황 이였지만, 아울러 空에 대한 강한 집착을 하고 있었음이 대화에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그렇다면 그것을 집어 들어라 하는 뜻밖의 선사의 말씀에, 죽은 空에서 그를 일깨워 주었고, 그를 진정한 깨달음으로 인도하였던 것이다.


    죽은 空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므로, 空에 대한 통찰력을 놓치지 않으면서 세상 어떤 일에도 뛰어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空은 허무주의적 환상적이거나 죽은 空으로 이해하여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것(空)은 정적(靜的)이고 초월적이면서 역동적인 공(sunyata)인 것이다, 그래서 필경공(畢竟空,절대 슈랴타.Absolute)은 자기부정(self  negating)이나 자기초월(self transcending)이며, 그것(空)이 모든 현상, 즉 제법을 지지하는(supporting) 것으로 인해 오든 사물은 존재 할 수 있으며 空이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므로, 공(sanyata)은 지극히 역동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에서 이것이 空卽是色(空은 色이다 고 표현한다)이다.


    앞에서 본 것같이 色卽是空은 우리의 일상적인 체험(경험)--물질과 모양에 집착하여 이리저리 망상 분열을 짖는 것-- 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空卽是色은 色(본질은 空 임, 물질. 에너지. 만져지는 모든 것)을 다시 긍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色을 보면 앞의 色卽是空의 色은 空(진리)을 근거로 한 色이며 영적으로 구원된 色이며, 분별은 넘어서 한 차원 높은 色인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佛의 빛이며 자비(은혜)이며, 극락과 지옥, 부처와 중생이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가 부처님이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마로 극락정토라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光明童耀 遍周沙界 眞如妙理 安色空兩者, 즉 광명이 밝게 빛나 항하사 세계에 두루 비치니 진연의 미묘한 이치가, 어째 色과 空의 두 글자에 있으리오]라는 이 문장은 시사 하는바가 크다.


    “色卽時空. 空卽是色”은 추상적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실존적 실재에 한 서술이다.


    이것은 묘사하기 어려운 언어도단의 불가사의한 직접체험(경험)인 것이므로, 직각(直覺:direct realization)을 통해서만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종교적 수행을 통한 스스로의 깨달음(覺)을 전면적인 초탈만이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이다.


    佛性을 이루는 길은 절대적 空으로 젖어 있는 무집착의 마음(sprit)이라 온갖 선행을 행하는 것이다.


    色도 아니고 空도 아니라고 이중적 부정을 하는 것은, 佛敎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예이며 이것은  眞理의 中道性을 표시하는 한 방편인 것이다.


    종교와 철학의 차이는 개인 각자의 직각적인 초월적 변화 체험에 있느냐(有). 없느냐(無)에 있는 것이다.


    진실한 큰 깨달음(大覺)의 단계를 오르지 못한“대중에 대한 설법”은 결과적으로 말장난으로 전락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우리 불자는 현시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항상 正道로 살아서, 成佛에 이르는 방법을 오직 佛 .法 .僧 三寶의 참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이다

                                                   日碧 德珍.

출처 : 나무아미타불
글쓴이 : 일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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