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느끼는 세 가지의 맛.

가을입니다, 나는 가을 들녘을 무척이나 좋아 한다, 흘린 땀의 결실을 수확하는 계절이라, 농촌에서는 벼 과일 채소 등 갖가지 농작물을 수확하느라 손이 모자라도록 즐거운 계절이 가을이라 더욱 좋아 한다.
그리고 또한 맑고 푸르며 높은 하늘과 따사한 햇볕, 또 가을바람이 주는 살찌는 마음은 가을이 주는 첫째 즐거운 맛이고, 가을이 깊어 가므로 주렁주렁 달린 누른 배. 빨아간 사과 등 탐스럽고 달콤새콤한 맛과 그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을이 주는 둘째 즐거운 맛이고,
가을을 진솔하게 느낄 수 있는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 핀 길,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山河를 보며 걷다가 맑게 흐르는 계곡물에 들국화 한 송이 띄워 보내려 손을 담그며, 인간사 기쁨과 슬픔을 함께 전하려 흘러가는 무심한 물소리는 가을이 주는 셋째 번 즐거운 맛이다.
이모두가 마음을 살찌우고 웃음을 다 함께하는 자연이 주는 가을의 세 가지(三味)이다.
고개를 들어 보면 파아란 색으로 선명한 높은 하늘, 손에 잡힐 듯 흘러가는 구름, 부드럽게 주위를 맴도는 바람은, 모든 것이 청명하게 다가오는 이 계절을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면 이미 가을의 문턱을 넘어 한걸음 더 와 있음을 느껴지며, 고추잠자리와 더불어 금시라도 가버릴 초가을 날들이 아쉬워 지기 시작한다.

예정에도 없이 마음 내키는 어느 날, 보라색 코스모스 핀 들길이나, 시들어 가는 잔풀이 무성하고 풋풋한 풀 내음이 코를 찌르는 들녘을 질러, 맑은 물이 졸졸 흐르며 단풍이 물들어 가는 山河를 모든 것을 떨쳐 잊어버리고 훌훌 가봐야 하겠다.
이제는 조석으로 제법 싸늘함을 느끼게 되니 가신님들이 더욱 보고 싶은 것은 나이 때문일까 하고 되물어 보지만, 아마 그립고 아쉬웠던 날들에 인자하신 임들께서 베푸신 따사했던 정을 못내 그리워 한 탓일 것이다.
“ 누가 석류꽃주머니를 핏빛으로 물들였나
파란 잎 새 구름사이로 반짝반짝 향이 번지 네
벌들이 가지 끝에 불이 난 줄 잘못 알고
서둘러 바람타고 담장을 넘어 가네.”
라고, 원나라 장홍범(張弘範)이 지은“석류 꽃”이 떠오른다.
초가을이 되면 시골집 담장 모서리에는 빨간 석류 껍질 터진 틈에 하얀 알들이 싱그러움을 자아내면 입안은 춤이 빙그레 돌아 고인다, 그 옆 코스모스는 가을바람을 타고 살랑이며 가을 노래를 부르는데, 이 가을은 왜 이다지도 그리움이 샘솟듯 나는가.
憬아야, 사람의 일에는 언제나 변화가 있고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그것 또한 고금(古今)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인연의 흔적을 간직한 가슴에 그리운 사람은 없지만, 마음 간절한 그 사람의 그리움은 보라 빛 들국화 되어 가을 들녘에 향기를 피우면, 가을바람 한줄기 그리움 떠 있는 가슴으로 오는 산사의 종소리는 지난 가을날 내가슴이 오손 도손 우리를 나누었던 山寺와 山河가 더욱 그리운 추억으로 하늘가 뭇 별이 되어 뜨면 시방 가을이 깊어만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가을 맑고 긴 호수에 벽옥 같은 물결에
연꽃 깊은 곳에 목란 배 매여 있네,
낭군을 만나 물을 사이에 두고 연밥을 던지다가
멀리 사람들이 알아 채버려 반나절토록 부끄러워하네.”라고 ,
이조 때 허난설헌의 詩“채련곡”을 삭이면서, 가을 맛을 실고 다니는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다 지치면, 들국화 향은 나에게 삶의 의욕을 북돋아 주는 유일한 영약이나 다름없다.
짙어만 가는 이 늦 가을 새벽에 憬아야,“佛者의 일상생활이란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늘 조심하여 부처님의 계율을 지키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젖어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싶구나.
지난 가을 어느 날을 그리며 碧 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