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만에 어머님 산거(山居)를 다녀와서.
반년 만에 어머님 산거(山居)를 다녀와서.
어언지간(於焉之間) 벌써 ‘喜’ 자의 초서가 ‘七十七’ 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이 ‘일흔일곱 살’ 을 달리 이르는 말인 희수(喜壽)가 된 나이에도 서울 나들이 한다니 마음이 들떠서 지난 밤 잠을 설치었다, 조카 결혼식에 가는 것이지만 아울러 오래 만에 어머님 山居에 다녀 올 수가 있어 서울 나들이 한다는 것이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어머님을 근참(覲參)하려 山居에 다녀 온지가 벌써 반년여를 지나다보니 뵙고픈 마음 더욱 간절하여졌다, ‘어머님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지난 새벽녘에도 두 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며 많이 보고 싶어 날이 밝으면 山居에 가리라 마음을 정하고 지새우다, 그 사람과 더불어 사당동에서 광주 오포읍 문형리 時安공원묘지 가는 버스를 타고 보니 이제 어머님 곁으로 가 잠시나마 있다가 올 수가 있구나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차를 내려 꽃과 재물을 사고 챙겨 바람도 없고 맑고 따사하기에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山居에 오르니, 山居 초입부터 서서히 연초록 봄빛으로 물들어 가는 산록, 봄이 무심한 체 땅위에 뒹구는 낙엽, 산새소리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다 이따금 지나는 바람소리, 촉촉하고 훈훈한 바람이 봄 분위기를 북돋우니 깊어가는 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두가 반기는듯하였고 어머님이 계시는 곳이라 그런지 산속이 어머님 품안인양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며 어린 시절 소풍가듯이 마음은 마냥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되었다.
山居에 자리하고 그 사람이 사온 고운 꽃 한 묶음을 화병에 꼽고 소주 잔 올리고 마른 잔디를 돗자리 삼아 함께 절을 올리고 나니 한결 마음은 더욱 편하여 졌다. 오는 4월이면 아버님 기일이 다가 오기에 더욱 자주 가 뵈어야 할 어머님 곁을 이런저런 일로 찾아 뵐 수가 없었던 불효가 새삼스레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린 시절마냥 山居 어머님 곁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시나마 눈을 감고 조용하게 명상에 잠기는데, 바람결에 실려 오는 봄 내음에 따듯한 햇볕, 명랑한 새 울음소리 그리고 봄 날씨에서도 파릇파릇 잔디 잎이 돋는 모습은 山居에 봄도 벌써 짙어지려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듯하였다.
어머님, 오늘도 이 아해 곁에 늘 어머님을 뵙는 듯 착각을 하도록 어머님의 모습을 닮아 이 아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와 절 올리고 앉아 있답니다. 어머님, 지금 계시는 곳에 흩날리는 낙엽과 차가운 바람과 눈 내리는 겨울이 지나가도 어머님의 주위를 쓸쓸하고 외로우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 집니다, 그래도 낮에는 따사한 햇빛에 산새들의 울음소리 산짐승들이 놀려오고, 밤에는 달빛 별빛에 흐르는 계곡 물소리 이름 모르는 풀벌레소리 산바람 소리가 연출하는 협주곡이 어머님의 벗이 되어 외롭지 않으리라 생각하니, 다소 위로는 되오나 늘 옆에 같이 있지 못하는 아쉬움은 더하여만 집니다.
어머님께서 설한풍이 불고 비를 맞고 외롭고 추운 山居로 가신 후부터 하루도 마음에서 잊어 본적이 없습니다, 어머님을 보내시고 어언 이십여 년을 넘게 홀로 살다보니 외롭고 허전할 때도 있고 불편할 때도 많으나, 다행이도 삶이란 바다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잠을 자든 책을 읽든 명상에 잠기든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있어 좋을 때가 많아 마음은 평온하여 다행이란 생각이다.
그 사람과 더불어 山居를 뒤로 하고 下山하는 발길은 가볍고 행복하였다, 이것이 사람 사는 보람이고 행복이 아닌가 하니 더욱 즐거운 마음이다. 더욱이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혼자 외로울까 아니 아프기나 할까 하는 고운 마음으로 山居를 올 때마다 동행을 하여주는 그 사람이, 오늘따라 참으로 예쁘고 고마운데도 고맙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는 심정을 이해하여주어 더욱 고마울 따름이다.
흘러가는 세월처럼 빠르게 下邱하는 KTX차창 밖을 무심히 내다보노라니 어머님과 헤어진지가 벌써 15년이란 흐른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어머님의 위대한 삶과 사랑이 가슴을 적시게 한다, 특히 어머님께서 치매(癡呆)가 더하여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어 팔십 넘은 어머님과 육십이 넘은 兒孩와 단둘이 웃으며 찌지고 볶으며 살아온 마지막 6년 8개월여의 삶은 잊을 수가 없으며, 그래도 우리 母子간은 그때 그 세월들은 참으로 행복하였었다.
우리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많은 사람과 인간. 인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의 삶은 만남이 오면 이별이 오고 이별이 오면 만남이 오듯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하는(會者定離) 연속인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즐거운 삶을 얻으면 또 잃기도 하고 슬픈 삶을 살다보면 즐거운 삶을 맞아 살듯이, 삶이란 무엇을 얻었는가 하면 무엇을 잃어버리기도 하면서 사는 게 사람의 삶이 아닌가 한다. 그러기에 어머님과도 잠시 헤어져 있는 게 인간사인가 합니다. 人生이란 한마디로 말한다면‘空手來 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삶이라 한다, 희수(喜壽)를 맞은 이즈음도 살다보면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이나, 이. 저 친구 만나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도 있는 가운데, 그리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여럿이 있고 부득불 어울려 만나 자리를 함께 할 수가 있는 때도 있는 게 사람의 삶인가.
어제도 오늘도 깊어만 가는 따사함이 젖어드는 봄밤 獨居에 홀로 있다 보니 지나온 날들에 대한 이 저 생각 에 잠겨 있다가도 이제 살아온 날보다 적게 남은 생을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인자하신 외할머님 자식 위해 엄하고 자상하시던 부모님 생각에 잠기며 함께 살아오던 고향집과 더 넓은 바깥마당에 큰 오동나무, 마음껏 뛰어놀던 고향산천과 함께 늘 그 사람도 그리움 되어 가슴으로 와 있다.
사랑하는 사람아, 사람도 기러기처럼 살다가 언젠가는 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편안한 인연의 님들이 계시는 곳으로 훨훨 유유히 날아가겠지, 佛家에서는‘한 목숨이 태어남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과 같고, 한 목숨이 죽어 감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 말하듯이, 뜬구름이란 그 자체는 본래부터 없는 것이듯 인생의 오고 감도 그와 같은 것이기에 우리는 인생을 如如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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