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풍지소리와 김치 맛.  
바람결에 흔들리며 사각사각 거리며 울든 문풍지 소리가 문득 그리워지는 대한(大寒)을 사나흘 지나 동장군이 연일 맹위를 떨치는 추운 겨울밤이다, 방문마다 밤새 울어 데는 문풍지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문풍지소리에 잠을 깨어나던 겨울밤 추억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겨울방학이 되어 고향 성주 외할머님 집에 가 지내노라면 매서운 바람이 불며 추운 날에는 문풍지가 떠는 소리가 들렸고, 그런 겨울날 밤이면 머리맡에 떠 논 자리끼가 얼음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눈이 내리면 나무 가지가 휘어질 정도의 눈이 많이 내렸었으며 밤이면 문밖에는 눈보라가 치는데 문풍지에서 소리가 났으며, 사흘은 따스하고 나흘은 매서운 삼한사온 날씨를 보였는데 특히 바람이 많이 불었다. 어린 시절 눈 내리는 겨울밤에는 밤마다 뒤 동산에서 그리움 때문인지 추워서인지 부엉이가 울었으며 이런 겨울밤이면 밤새 문풍지도 울었다. 이제 세월 따라 주거 환경이 변하다 보니 창호지문은 거의 사라진지가 오래되어 이따금 한옥에서만 겨우 문풍지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겨울바람 부는 날 문풍지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다보니, 뒤 동산 밤새 부엉이 우는 구슬픈 소리와 더불어 밤새 울던 문풍지소리가 그리운 것은 고희를 넘긴 나만의 추억이 아닐 것이다. 겨울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지로 바른 것이 문풍지라 하는데, 질 좋은 한지의 문풍지소리는 저음이면서 폭이 넓고 기계로 만든 양지의 문풍지는 떨림이 빨라 고음이 나서 음폭이 좁다. 그런데 요즘 현대식 아파트에서 정겨운 한지 문풍지소리는 간곳없고 비닐로 된 문풍지 소리를 듣고 살게 되었다. 겨울 문풍지 소리와 더불어 잊을 수가 없는 것이 또한 김치이다, 그래서 겨울 밥상의 맛은 김치 맛이고 찬 맛이라고 한다, 근래 들어 육 여년을 넘도록 남도음식, 특히 남도 김치 맛에 맛이 들었다, 그러나 외할머님이 담아주시던 고향 성주 김치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고 매서운 칼바람에 찬 동치미 국물 맛은 지금도 생각하면 살얼음이 사르르 녹으며 입안이 시리어 지면서 느끼는 그 맛이 이따금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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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는 찬바람 나면 마당 한 모퉁이 독 묻을 자리를 파고 젓국의 농도로 앞뒤 먹을 순서를 정하여 김장독을 묻었다가 한 두포기를 꺼내어 밥상에 오른, 비린 젓국에 알맞게 삭아진 김장김치에 겨울이 익는다고들 한다. 그는 먹을 복이 많은 타고난 사람인가보다, 어린 시절에는 외할머님이 지은 농산물에다 솜씨로 맛있게 먹었었고, 노년에는 그 사람 덕에 다시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는 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고 행복한 삶이 아닌가 한다. 오랜 세월을 홀로 독거에서 살다보니 새벽예불을 마치고 나면 으레 이른 아침 식탁엔, 굴국. 소고기 무국. 미역국. 나물국. 갈비탕. 곰탕. 북어국 등 중 하나와, 칼치 조림. 문어. 낙지 등 해물류에다 무우말랭이. 시금치. 간장에 절인 깻잎에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무우생채. 양배추(cabbage)김치 등 등 모두가 그 사람이 정성들여 만들어 부쳐주는 반찬들로 생각하기보다 김치는 입을 즐겁게 하는 맛있는 반찬(飯饌)이 올려 진다. 특히 아리게 맵지 않은 고추. 마늘 등은 南道의 순수한 토종들이라 입맛을 더욱 북돋아 주는데다가, 이따금 남도 해안에서 잡은 문어 낙지 꼴뚜기 등 해물은 더욱 입맛을 북돋아 주기에 늘 감사하는 마음이나‘고마움’을 그리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에는‘고마움’이 마음 깊이 새겨지면서 창문에 부다치는 바람소리에 문풍지소리를 듣는다. When Winter Comes (겨울이 다가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