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 山居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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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새벽녘에도 두 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며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날이 새면 山居에 가리라 마음을 정하고 지새우다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역으로가 KTX를 올라 서울로 향하였습니다.
경기도 광주 능평리 山居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었으나 산새소리 눈 녹아 흐르는 물소리에다 이따금 지나는 바람소리, 그 모두가 나를 반기는듯하고 어머님이 계시는 곳이라 그런지 산속이 어머님 품안인양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며 행복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리 높지도 않고 오르는 길도 잘 되어 있으나 몇 년째 무릎을 앓고 있어 어렵기는 하여도 어린 시절 소풍가듯이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어머님이 좋아하는 새 노랑 개나리꽃 빨간 복사꽃 보라색 안개꽃을 꽃병에 꼽고, 소주 잔 올리고 눈을 돗자리 삼아 절을 올리고 나니 한결 마음은 더욱 편하기에,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시나마 눈을 감고 조용하게 생각에 잠기어 보는데, 바람결에 실려 오는 봄내음 따듯한 햇볕 명랑한 새 울음소리 그리고 눈 속에서도 파릇파릇 잔디 잎이 돋는 모습은 山居에 봄이 벌써 와 있다는 소리가 가늘게 들리는 듯하다.
산거에서 보니 하늘과 땅 사이는 참으로 넓어 끝닿는 곳 없이 텅 비어 있기에, 내가 아는 어느 글쟁이가,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어 자기가 부르는 임의 이름이 비껴만 가니 자기가 죽을 것이라고 하던 말이 새삼 떠올라진다, 지금 山居에서 하늘과 땅 사이가 넓기 때문에 부모님을 마음 놓고 불러 볼 수가 있어 행복하기만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가 넓어서 주는 가피(加被)인가 생각하게도 한다.
봄여름 가을 겨울, 일 년 사계절 철마다 기후가 다르고 풍경이 다르지만 삭막하고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하고 화사한 봄이 오면 우리들의 마음은 한결 더 들뜨고 설fp이나, 계절의 변화는 천지자연의 큰 섭리 가운데 한 현상에 지나지 않기에 사람이 어찌 한 철만 느끼고 사는 미물이겠는가 한다.
시간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기에 일찍이 주희(朱熹)는 우성시(偶 成詩)에서‘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한 치의 시간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少年易老學難成),一寸光陰不可輕)’라고 하시었다. 즉 작은 것 작은 일을 하잖게 여기다 크게 실패를 겪게 되는 경우가 사람들에게는 다반사이기에, 忠孝 시간 면학 등 한번 잃으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고 많으니 놓치지 말고 잘 지켜나가야 하겠다.
우리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고 사람이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자면 저마다 주인이요, 저마다 오래 살 궁리를 하고 있다 보니 그 무지몽매함이 비할 데가 없는 모습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父母의 은혜를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고, 삶을 마치면 영혼과 육신이 다시 하늘과 땅으로 돌아간다, 그리기에 父母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돌아가는 바탕이요 고향이라 하겠다.
우리는 父母의 은혜에 대하여는 말로서는 하기가 쉬우나 실행하기에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기에 공자(孔子)는 孝經 天子를 인용하여‘孝는 百行의 根本이다’라고 하셨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사람이 남을 미워하거나 업신여기지 않는 것은, 자기의 그러한 행동이 행여 父母에게 화를 미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라고 하겠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있음에 반듯이 父母에게 孝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즉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행복의 절대조건일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탐욕을 부리는데,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은 끝내 만족할 줄 모르기에 사람들은 항상 상대적으로 빈곤감에 시달리게 되고 父母에 대한 孝도 또한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스스로 만족하기 때문에 그 만족을 바탕으로 행복을 만들어 나가고, 물질이나 名利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넉넉하기에 父母에 대한 孝를 잊어버리지 않고 행하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한 것은 그 자체가 불행이요 항상 부자라면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행복과 불행은 저마다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부자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삶의 보람이듯이, 사람이 자기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여준 父母에게 孝를 행하는 것은 자식으로는 道理이며 사람으로는 天倫이라 하겠다.
사람으로 태어나 父母의 分身이자 血統인 자식으로서 父母를 보호하고 부양하며 孝道를 다 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믿음이나 존경을 받지 못하며 통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不孝子가 되는 것이다. 즉 사람은 道理에 따르지 않으면 사람이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잠시나마 山居에 앉아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父母님과 나는, 인연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연인가? 어떤 인연인가를 되 뇌이면 시간이 흘러도 확연한 답이 없고, 空한 가슴에 물음에 대한 메아리의 여운만 남기에 바람에 실어 보내며 山居를 내려오는데 가신님들 모습이 떠오르며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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