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막힌 政治와 말(言).
외롭고 막힌 政治와 말(言).
- 외롭고 막힌 정치의 처방은 放夏着이다 -
사람의 신체구조를 보면 눈 코 귀와 손발이 각각 2개씩인데, 이는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숨을 쉬며 움직임에 있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 것으로, 우리 사람을 창조한 창조주만이 그 비밀을 아는 일인가, 아니면 자연의 섭리대로 인가, 만일 그것들이 한쪽만 있다면 얼마나 불편하고 불완전 할까 생각하면 창조주는 위대하며, 아니면 세월이 흘러가며 자연스레 진화에 의한 것인지 영원한 의문일 따름이다.
오늘날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어 민주의의적인 제도를 여러 나라에서 도입한 것은, 보다 개방적이고 폭 넓은 국정을 수행함에 있어 여러 사람의 지혜를 폭 넓게 반영하기 위한 것이며, 어느 한 사람의 독단과 아집 및 편견과 폐색으로 일관한다면 모든 것을 어렵게 하고, 더 나아가 망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며 또한 이일이 좋던 나쁘던 人爲的인 인간의 일이다.
그러기에 남조 宋의 범엽(范曄)은‘後漢書 신종강전(申宗剛傳)에서’에서,
專己者孤(전기자고) / 자기 뜻대로 하는 자는 외롭고 拒諫者塞,(거간자색) / 충고를 듣지 않은 자는 막히게 되는데, 孤塞之政(고색지정) / 외롭고 막힌 정치를 하는 것은 亡國之風也.(망국지풍야) / 나라를 망치는 길이다. 라고 말하였으며,
또 孔子는 論語 憲問(헌문)에서‘말(言)하는 것은 사상 감정을 표탈(剽奪)하는 도구인 동시에 말하는 사람의 인격을 가름 하는 척도(尺度)이기도 하며, 더불어 실천 의지를 표출(表出)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옛날부터 말을 삼가는 言行一致를 美德으로 여겨왔으며, 말없이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은 말이 없다고 비난 받지 않지만, 말만 많이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믿기 어려운 사람으로 지탄을 받거나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6.2 지방선거로 인하여 한참 움직임이 활발하고 말도 많아지고 있는데, 과거 수십 년 동안 선거판마다 후보자들이 내세운 약속만 제대로 지켜져 왔다면,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일등국가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나, 그래서 거짓말하는 사람을 뽑는 것은 국민으로서 수치(羞恥)요 국가에 해(害)를 주는 것이며 더 나아가 망치는 길인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하는 말 하는 것이나, 매일 접하는 사회의 공기(公器)인 신문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실을 보도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을 위하여 봉사하여야 하는데, 社是社益(사시사익)에만 집착한다거나 사실을 왜곡(歪曲)또는 과장 한다거나 편파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신문으로 공기를 망각하는 것이며 또한 국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서는 해로운 일이라 하겠다.
그래서 주역(周易) 계사(繫辭)에서도‘말하는 사람의 속셈이나 심리상태에 따라서 그 말투가 달라진다’고 하고 있으며, 또한 대대례기(大戴禮記)에도‘말은 하지만 미덥지 못하면 차라리 말을 하지 못함만 못하다(同言而不信 寧無言也)’라는 말도 있다. 즉 말은 사람이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기본수단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약속의 신표(信標)기능을 수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어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것처럼, 사람은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남을 통하여 발견하고 고쳐 나간다, 그래서 孔子도‘사람 셋이 길을 간다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듯이, 남의 허물을 바로 나의 허물을 깨닫게 하는 거울인 것이다.
또한 管子 소칭(小稱)에‘백성들이 보는 눈은 자상하고 밝아서 그들의 눈을 속여 나쁜 짓을 할 수는 없다, 백성들도 내가 잘하면 곧 다들 칭찬하고, 내가 잘못하면 곧 나를 비판한다’고 쓰고 있으며, 또한 孟子에 보면‘하늘은 백성을 통하여 보고 듣는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爲政者가 선정을 베풀면 백성들이 이를 반기고 기다리므로 하늘이 이에 복을 내리고, 위정자가 정치를 잘못하면 하늘이 백성들의 힘을 빌려 위정자를 갈아치운다고 하는말인데, 이는 王權政治를 하던 시대에는 금기(禁忌) 중 금기인 이른바 역성혁명(易姓革命)의 기본 논리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국가에서는 수시로 위정자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나 인기도를 조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국민들의 눈을 두려워하기는 에나 지금이나 마찬가진 것이라 하겠다.
우리 政治판이나 宗敎界가 다 大同小異하나 정치판과 마찬가지로, 佛者로서 우리 불교계의 내부 분쟁도 정치판과 다를 바 없는 형국이라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다, 즉 한편으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어 소통(疏通)과 和合을 내걸고 출발을 보인 자승 총무원장과, 2006년 말썽 많앗던 봉은사의 주지로 부임한 후 佛敎 都心포교의 새 地坪을 연 명진 스님의 대립은 불교 발전을 기대하는 많은 佛子-佛者에게 안타까움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생각해보자 이들은 和合을 德目으로 삼는 승가(僧伽) 공동체의 전통에 입각하여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싶으며, 정면충돌을 향하여 달리고 잇는 봉은사 사태를 보며 할 수 잇는 말은“그 말을 내려 놓으라”는 선사들의 가르침인“放下着(방하착)”이 떠오른다. 아니 더불어 政治權과 政治人에게도 放下着이라 말을 하여 주고자 한다. |